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년 여의 긴 옥중 생활을 마감하고 드디어 출소를 했습니다. 중간 특별 사면 과정도 없이 의정부 교도소에서 만기출소한 것인데요.
2년 동안 가혹했던 고통을 견뎌내고 새로운 세상을 드디어 만나게 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누구인지, 어떤 정치 인생을 살아왔는지, 또 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 수수 혐의가 날조 재판이자 정치보복인 이유인지 등등을 요약 정리했습니다. 함께 보시죠.
1 한명숙 전 국무총리 누구?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1944년 3월 24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이화여자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 후,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시작으로, 이듬해 신설된 여성부 초대 장관, 참여정부로 넘어가던 과도기 시절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일산 갑에서 당선되었고, 2006년 4월에는 한국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라는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세운 인물입니다.
여성부 초대 장관 시절에는 김대중 정부 주요 업적 중 하나인 호주제 폐지 및 여성쿼터제 등이 한명숙 주도로 이뤄진 것이며, 이 당시 처음으로 생겨난 출산휴가, 육아휴가 등이 모두 한명숙 여성부 장관의 업적입니다.
2 '최초로 실형을 선고받은 국무총리', 한명숙 사건이란?
한명숙 사건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참여했던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 국면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데요.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국무총리 퇴임 이후에 열린우리당으로 돌아가서 2007년 당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게 되었고, 대선 후보로 확정된 정동영을 보좌해서 문국현과의 후보 단일화 등을 지휘했으나 실패를 맛보며 결국 정동영은 대선에서 낙선하게 됩니다.
바로 이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친 정차자금 수수 혐의가 드러나며 2009년 기소되고, 두 건의 정치자금수수 혐의 중 대한통운건은 무죄로 선고받았으나, 최종적으로 한신건영건이 유죄 판결이 확정되며 실형을 선고받고 2015년 8월 24일부터 서울구치소에 수감됩니다.
5 한명숙 사건 정치보복, 날조 재판인 이유는?
하지만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실형 선고는 최초 기소 이후 5년 이상 시간을 끌면서 결국 대법원까지 갔지만,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전원합의로 끌고간 대법원에서조차 8:5 유죄선고로 구속이 집행되며, 대법관들 마저도 유죄선고하기가 낯간지러워 8:5라는 애매모호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는 논란과 함께 정치보복, 날조 재판이라는 논란이 일게 됩니다.
특히 검찰 수사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줬다고 말한 사람은, 추후 조사 결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건설업체 사장이었고, 본인이 배임혐의로 재판중에 유리한 판결 받으려고 위증했다고 실토한 바 있기에 날조 재판이라는 논란이 커지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한명숙 의원 동생에게 전세자금 5,000만원을 빌려줬다는 김 모씨는 약속대로 2주 뒤에 돈을 돌려받았기에, 결국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것은 정치자금을 준 사람도 없고 받은 사람도 없는 것이었지만, 정황상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유죄, 결국 대법원까지 가게 되고, 대법원은 무죄를 뒤엎고 8:5라는 애매모호 낯뜨꺼운 대법원 합의로 최초로 실형을 선고받은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당시 네티즌들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실형 선고를 두고, 새누리 계열이 지배하는 대법원에서조차 8:5가 나온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며 날조 재판, 정치 보복에 분개를 했고, 1,2심서 선거개입 혐의로 유죄였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는 사건을 파기환송시킨 대법원이 1심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는 반대로 유죄판결을 내며 법적 만행이라며 국민적 분노를 사기도 했습니다.
3 한명숙 남편 박성준 누구?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이화여자대학교 불문학과 재학 중에 남편 박성준을 만나 1967년 결혼을 하게 됩니다만, 그러나 결혼 6개월만에 남편 박성준이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수감되어 1981년에 석방될때까지 무려 13년간 옥바라지를 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하지만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남편 박성준의 옥바라지를 채 끝내기도 전인 1979년 크리스챤 아카데미 여성사회분과 간사 시절 반공법 위반혐의로 당시 중앙정보부에 본인마저 체포되어 1981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기까지 본인마저 2년 6개월 간 감옥살이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통일혁명당 사건은 북한 조선노동당의 지시를 받는 지하당인 통일혁명당 조직원들이 북한으로부터 공작금을 받고 간첩활동을 벌였다는 사건으로, 이 사건으로 무려 문화, 종교인, 학생 등 158명이 검거되었고, 주범으로 지목된 김종태, 김질락은 사형됐고, 그 외 4명이 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간첩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남편 박성준 교수 역시 이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 반공법 위반 등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실제 13년 가까이 복역하게 되었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역시 이 사건으로 20년간 수감생활을 하게 된 사건인데요. 그래서 현재 성공회대학교 NGO 대학원 평화학 겸임교수를 지내고 있는 한명숙 남편 박성준에 대해 간첩 키워드가 붙어 논란이 이는 것입니다.
4 한명숙 총리 출소 이후 정치 계획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19대 대선 직후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서 '다시 봄바람이 분다'는 옥중편지를 강기석 노무현재단 상임위원에게 보냈다고도 하는데요.
당시 편지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두고 소박한 꿈을 가진 보통 사람과 작은 바람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 손에 손을 맞잡고 만들어낸 역사의 봄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2년 간의 무고한 옥살이를 끝낸 한명숙 전 국무총리 역시 이제는 소박한 꿈을 가진 보통 사람이자 작은 바람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굴곡의 현대사의 산증인이신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앞으로 남은 인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기를 기원하면서, 동시에 의정부 교도소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출소를 마중나간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바람마냥 우리 사회가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필요로 하면 마다않고 참여해주실 것 역시 기대해 봅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출소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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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출소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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