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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세계

다운증후군, 방사능 공포, 성장 호르몬 결핍, 심장 이상 등등, 가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최고가 된 축구 스타 톱10

가난이 성공을 위한 최고의 동기가 된 경우는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스포츠에는 몸뚱아리 하나와 불굴의 집념과 의지로 세계 최고의 부와 명예를 거머쥔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아주 많습니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스타들, 그중에서도 단일 스포츠 종목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인 축구의 경우에는 어떤 스타들이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가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최고가 된 축구 스타 톱10' 함께 보시죠. 



 10  웨인 루니 - 다운증후군을 극복한 맨유의 아이콘

웨인 루니는 얼굴형에서도 눈에 띄듯, 어린시절 다운증후군을 앓고 태어난 아이였으며, 그 때문에 부모님에게 버림받아 입양아로 자란 과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살림에도 다운증후군 아이 루니의 입양을 결정했던 현 부모님들은 웨인 루니가 정상적으로 자라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런 루니가 축구공에 집착하는 것을 보고 양아들을 축구학원에 보내 지원했고, 이후 루니는 에버튼에서 화려한 데뷔를 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타가 됩니다. 


첫 사랑과 결혼해서 두 명의 정상적인 아이를 낳고 살다, 바람을 피워 이혼설이 나돌고, 현재는 맨유에서 방출이 기정사실화된 상태로 자유 이적 선수가 될 것이 유력한 상태지만, 어린 시절의 다운증후군이라는 역경을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이겨내고 최고의 스타 선수가 된 웨인 루니는 잉글랜드 많은 아이들의 여전한 꿈과 희망입니다. 



 9  알렉산더 흘렙 - 체르노빌 방사능을 이겨낸 기적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날과 스페인 라리가 FC 바르셀로나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던 알렉산더 흘렙은 그야말로 고난과 역경의 산증인입니다. 무려 체르노빌 참사의 영향 아래 여전히 놓여 있던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인 벨라루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 흘렙의 아버지는 방사능 때문에 살지 못하는 집들을 철거하는 일에 자원했고 훗날 병을 얻어 사망했고, 어린 흘렙은 축구화도 없이 다 낡아빠진 부츠를 신고 방사능의 위험을 늘 등에 진 채 민스크의 콘크리트 구장에서 공을 차며 시간을 보냈고, 그러다 벨라루스 축구팀인 바테 모리소프에 입단하는 기회를 얻은 후, 아스날과 바르셀로나 같은 팀에서 스타가 되는 영광의 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방사능 역경을 이겨낸 축구 성공신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8  알렉시스 산체스 - 소년 광부 출신의 칠레 축구왕

지난 2015년 남미 축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코파 아메리카 결승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누르고 코파 아메리카 2연패를 달성한 칠레의 주축 선수는 알렉시스 산체스였습니다. 


흔히 '소년 광부 출신의 남미 축구스타'로 불리는 알렉시스 산체스는 칠레의 광산지역으로 윰여한 토코필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도망을 치는 바람에, 어머니와 외삼촌과 함께 일찌감치 두 동생을 책임지는 생업전선에 뛰어든 산체스는 학교를 다닐 나이에 광산에 들어가서 구리를 캐고, 남는 시간에도 야채장사, 공사장 막노동 등을 하며 벌이를 충당했다고 합니다. (산체스가 학교에 가기 싫어했던 이유가 학교 청소부로 일하는 엄마의 모습이 창피해서였다고도 하죠.)


그런 산체스에게 유일한 낙은 외삼촌이 준 낡은 축구공 하나였는데, 맨발로 콘크리트에서 축구를 하던 산체스는 결국 지역 구단을 거쳐 이탈리아 우디네세로 이적했고, 이후 스페인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는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산체스의 FC 바르셀로나 이적 당시 많은 유럽 명문팀들의 거액의 러브콜이 있었음에도, 산체스는 조카가 FC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외삼촌의 유언을 따라 바르셀로나행을 선택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인데요. 최근 현 소속팀인 아스날에서의 잔류와 바이에른 뮌헨행 사이에서 고민중이라고 하네요.



 7  루카 모드리치 - 전쟁도 막지 못했던 축구에 대한 열정

루카 모드리치는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 주장이자 2008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서의 4년 간의 활약을 거쳐, 현재는 스페인 최고 명문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의 중앙 미드필더를 맡고 있는 주축 선수입니다. 


루카 모드리치의 불우한 환경은 한 마디로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모드리치의 어린 시절은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시기와 겹치는데, 어린 시절 루카 모드리치는 할아버지가 세르비아 반군에게 마을에서 공개처형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초등학교 시절 축구를 시작하던 때는 나무로 된 정강이 보호대를 살 돈이 없어 직접 나무를 깎아야 했고, 크로아티아 추구팀 하이두크 스플리트와 계약을 못했던 이유가 영양실조로 인한 체중 미달이었다고 하죠.


그런 루카 모드리치 역시 각고의 노력과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크로아티아 디나모 자그레브의 스타 플레이어가 됐고,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그리고 2012년에는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되며, 최근 2020년까지 소속팀 레일 마드리드와 연장 계약을 맺으며 여전한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6  카를로스 테베즈 - 자고 일어나면 길거리에 시체가 뒹굴던 빈민가 출신

유벤투스의 간판, 포스트 플레이와 원톱 돌파의 귀재, 리오넬 메시, 곤살로 이과인, 세르히오 아구에로와 함께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최고의 공격수, 그리고 우리에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당시 박지성과 함께 뛰었던 맨유 선수로 기억되는 카를로스 테베즈 역시 지긋지긋한 가난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축구 스타플레이어입니다. 


카를로스 테베즈는 아르헨티나 빈민가와 우범지대로 유명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시우다델라 출신입니다. 밤이면 총성이 빈번한 곳이라 아이들이 혼자 밖에 나가는 것은 금물이며, 다음날 학교를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갔을 때 시체를 보는 게 예삿일이었다고 하며, 어린 시절 함께 도둑질을 하던 친구는 경찰의 총에 맞아 살해당하기도 했고, 만 10개월 당시 뜨거운 물에 목과 가슴에 화상을 입었던 테베즈는 응급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심한 화상 흉터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런 테베즈가 잉글랜드 최고의 명문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했고, 이후 이탈리아 최고 명문 클럽인 유벤투스에서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을 했으니 정말 불굴의 의지로 최고의 자리에 로는 역경 극복의 아이콘이죠.


게다가 종종 유인원에 비유되는 얼굴로도 선수 생활 시절 숱한 여성편력을 거쳤고, 최고 미녀와 결혼해서 딸바보까지 되었으니 남자들에게는 최고의 선망의 대상이 아닐까 싶어요.



 5  네이마르 - 펠레의 고향, 갱들이 판치는 브라질 우범지대 출신

펠레를 잇는 브라질의 차세대 축구 황제 네이마르는 어린 시절 달동네에서 자랐습니다. 태어난 곳도 브라질 상파울루의 대표적인 빈민가 파벨라로 펠레와 같은데, 그래도 펠레는 갱들이 판치는 우범지대에서 구두닦이를 하며 자랐다지만, 네이마르는 집은 가난했어도 축구를 응원해주는 가족들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겨우 3살 나이의 네이마르가 축구공을 손이 아니라 발로 잡는 것을 보았을 때, 네이마르의 부모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이 아이를 축구 선수로 만들겠다는 촉이 왔다고 하죠. 2017년 FC 바르셀로나와 2021년까지 재계약을 한 네이마르는 순자산만 1,000억이 넘는다고 하니, 가난한 집안에서 전형적으로 몰빵 지원을 받으며 운동을 한 대표적인 성공신화가 바로 네이마르 아닐까 싶네요.



 4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가난한 이민자 가정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다른 선수들은 은퇴를 고민하는 나이인 36살에 맨유에서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복지천국 스웨덴 출신이지만, 보스니아 출신 아버지와 크로아티아 출신 어머니를 둔 이민자 집안은 제대로 된 복지를 누리기가 어려워 어려서부터 가난에 익숙해졌고, 거기에 부모의 이혼까지 겹쳐 청소년기에 힘든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 축구에 눈을 떠서 지역 유소년 클럽에서 공을 차게 되었지만, 너무 가난해서 클럽 훈련 경비를 내지 못 하자 클럽 관계자가 선수가 아닌 부두에서 일을 하는게 어떻겠느냐고 권유를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클럽 감독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아껴서 계속해서 축구를 할 수 있었고, 이후 고등학생이 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축구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는 도박을 했고, 그 도박이 성공해서 네델란드 아약스, 이탈리아 세리에 A 유벤투스, 한때는 스페인 FC 바르셀로나, 그리고 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까지 세계 최고 축구 클럽을 모두 경험하는 최고의 선수가 됩니다. 



 3  프랑크 리베리 - 아직도 선명한 얼굴의 큰 상처

지네디 지단이 '프랑스 축구의 보석'이라고 칭했던 프랭크 리베리는 프랑스 파드칼레 볼로뉴의 빈곤층이 밀집된 달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리베리는 가난도 가난이었지만, 겨우 나이 두 살 때 가족이 탄 차가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로 오른쪽 얼굴을 100바늘 이상 꿰매는 대수술을 받았고, 이후 '프랑크 슈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유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지금도 오른쪽 뺨에 흉터가 선명하답니다)


축구로 성공하기 전까지 리베리는 아버지와 함께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지냈는데, 가난과 불운으로 점철된 힘든 시절을 보냈지만, 자신의 불운에 분노만을 하지 않고 축구에 쏟아 부어 자신을 계발하고 성장시킨 결과 지금의 최고의 선수가 된 것입니다. 불우한 환경과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되네요. 



 2  리오넬 메시 - 키가 자라지 않는 희귀병

인간이 아닌 신의 축구를 구사한다는 현존하는 최고의 축구 슈퍼스타인 FC 바르셀로나의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는 작은 키라는 역경을 극복한 선수입니다. 현재 메시의 신장은 169cm로 공식 프로필에 등재되어 있지만, 이는 현대의술의 기적적인 치료를 받은 결과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 신동이라는 말을 들으며 최고의 기량을 펼치던 메시는 11살이 되었을 때 의사로부터 '성장호르몬 결핍증'이라는 판정을 받았고, 의사는 메시가 성인이 되었을 때 예상 신장을 150cm 정도로 진단합니다. 


제아무리 축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150cm로는 축구의 어떤 포지션도 소화할 수 없다는게 자명한 사실이었고, 이에 메시의 부모님은 아르헨티나를 떠나 메시의 치료를 감당할 수 있는 팀을 찾았고, 드디어 메시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본 FC 바르셀로나가 거액의 치료비 전액을 지원해서 5년 여의 치료 끝에 메시는 현재의 키인 169cm까지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메시의 활약은 말이 필요없죠. 현대 축구 역사상 가장 필요했던 20cm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1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지독한 가난과 심장 수술

라리가 한 시즌 최다 득점왕, 챔피언스리그 최다 득점왕, 챔스 최다골에다가, 지단과 호나우두와 함께 최다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자에, 한 해 수익만 1,000억이 넘는 세계 최고의 부자 선수인 호날두는 가난과 역경 극복기에서도 슈퍼 스타급의 사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알콜 중독자 정원사와 청소부 일을 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호날두는 100만원도 안되는 부모님 수입이 모두 아버지 마약 중독 치료비로 쓰이고, 두 명의 누나와 한 명의 형과 같은 방을 써야 하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축구공이 없어 양말을 말아서 써야 했고, 빈 깡통을 차며 축구 실력을 연마해야 했습니다. 


청소년 시절 실력을 인정받아 호날두는 드디어 포르투갈 명문구단 스포르팅 리스본에 입단할 기회을 만납니다. 하지만 메디컬 테스트중 15살의 호날두의 심장 박동이 지나치게 빠르다는 것이 발견되자 구단은 축구를 그만둘 것을 권유했고, 이에 호날두는 선수 생명을 걸고 수술대에 오르게 된 에피소드는 아주 유명하죠.



그리고 2003년 여름 스포르팅 리스본의 연습경기에서 호날두를 지켜보던 한 노신사는 다음날 전세기를 빌려 이 소년의 부모님을 만나 입단 계약을 맺습니다. 그 노신사가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알렉스 퍼거슨이었고, 이후 호날두는 6년 동안 맨유 최고의 스트라이커이가 되었고, 2009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현재까지 현존 축구계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울 태세로 최고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호날두는 화려한 사생활로도 유명하지만, 전세계 스포츠 스타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기부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자신의 고향 마데이라섬에 폭우가 쏟아져 40여 명이 목숨을 잃자 거액의 돈을 기부했고, 소아암 어린이의 치료비 전액을 지원하고, 내전으로 고통받는 시리아 아이들을에게 거액을 지원하는 등 돈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향한 선행도 유명합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호날두가 축구 선수들에게 흔한 문신이 하나도 없는 이유를 아시나요? 그 이유는 문신을 하면 1년간 헌혈이 금지되기 때문입니다. 돈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의지로 남을 돕겠다는 호날두는 늘 정기적인 헌혈를 하는 슈퍼스타로도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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