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dailysuperheroes
DC와 워너브라더스가 절치부심하여 DC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재정비하려는 각오로 내놓은 첫 타자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DCU의 팬들이 아니라고 해도 그 너무도 어마무시했던 마케팅 공세에 살짝 기대를 걸어볼 법도 한 일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슈퍼히어로물의 팬들에게는 재미있는 슈퍼히어로 영화는 다다익선이니까요.
드디어 뚜껑이 열리자 팬들과 평론가들 사이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 대해 일부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킬링 타임용도 못 된다, DC는 이제 영화 만들기를 중단해야 한다는 혹평까지 쏟아냈습니다.
아무리 소문난 잔치기로소니, 이렇게까지 먹을 게 없나 하는 원성이 자자하네요. 특히 제목에서부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드러난 두 히어로의 대립은 설득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싱겁게 해결되며 영화 역사상 거의 가장 어이없는 반전을 연출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달에 개봉했으며 우연히도 두 슈퍼히어로,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갈등을 그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대 슈퍼맨'이 저지른 모든 실수를 되새기게 하는 거울이 되고 말았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MCU 최고의 영화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그래도 '배트맨 대 슈퍼맨'과 비교를 하자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지는, 기름 잘 친 기계락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배트맨 대 수퍼맨: 저스티스의 시작'보다 잘 만든 영화라는 이유 몇 가지를 추려보았습니다.
1.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는 뜬금포식 플롯이 없다!
'배트맨 v 수퍼맨'은 큰 줄기의 플롯이 흘러가는 과정도 그렇지만, 그 아래 서브플롯들이 의미가 없고 재미 없고 논리에 닿지 않는다는 불만을 들어야 했습니다. 가령 로이스 레인은 플롯에 필요하니까 나오는 게 아니라 수퍼맨의 연인이므로 나와야 하니까 나왔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습니다. 렉스의 음모를 파헤치는 데 로이스 레인이 수퍼맨을 함정에 빠뜨렸던 총알을 영화의 반 토막쯤 잡아먹으며 쫓아다니게 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은 없었을까요?
반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플롯과 복선을 설득력 있게 다듬어 나갔습니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비교 러닝타임은 4분밖에 짧지 않지만, 관람 시간이 훨씬 짧게 느껴집니다. 가령 어벤져스 본부에서 비전과 스칼렛 위치가 나누던 별로 필요해 보이지 않던 순간도 나중에 가서 플롯에 중대한 의미가 있었음이 밝혀지는 그런 식이죠.
2.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연륜의 차이가 느껴진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대전제, 가장 큰 플롯은 세상을 구하겠다는 슈퍼히어로들의 활약 와중에 무고한 희생자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데서 생긴 갈등입니다. 늘 수퍼빌란들만 상대하다가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이런 접근은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해결 방법은 어째서인지 서투르기만 했습니다. 슈퍼맨은 누명을 쓰고 계속 쫓겨다니기만 하고, 수퍼맨이 악이라는 배트맨의 믿음은 더 깊게 다듬어지지 못한 채 영화 어디에선가 어물쩍 넘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에서처럼 로스 장군을 등장시켜서 어벤져스들끼리 서로 만나 논쟁을 벌이고, 그럼에도 갈등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를 영화 내내 설명해주는 솜씨 있고 친절한 과정이 없었습니다.
비전이 세상의 가장 강력한 수퍼히어로들이 더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켰다고 성토하는 장면이나, 토니 스타크로 하여금 나중에 액션에 나서게 동기를 부여해준 정부요원과의 만남(그녀는 스코비아에서 잃은 아들 얘기를 한다) 같은 것 말입니다. 심지어 지모 대령이라는 빌런도 슈퍼히어로와 슈퍼빌런들의 전쟁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의 가족으로서 내러티브의 톱니바퀴에 맞아 들어갑니다.
3.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 비해 싸움의 이유가 명확하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는 안타깝게도 캐릭터의 그럴듯함에 대해서도 많은 의문을 품게 합니다. 렉스 루터는 왜 총알들을 손에 넣으려 했을까? 심지어 영화에서 그는 왜 슈퍼맨을 증오하는 걸까? 그리고 배트맨의 의심이야 그렇다 쳐도, 일반 대중은 왜 아프리카에서 슈퍼맨이 사람들을 죽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슈퍼맨과 배트맨은 무작정 싸움에 달려들기 전에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히어로들처럼 대화라도 시도해보려고 하지 않는 건가? 로이스 레인은 왜 얼마 안 있다 바로 꺼낼 크립톤 창을 물에다 던져 넣은 걸까?
이렇게 캐릭터들에 담긴 논리가 그럴듯하지 않은 것은 그 캐릭터들이 어떤 동기로 움직이는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도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는 메인 캐릭터의 로직을 세우는 일마저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4. 과연 경험에서 나오는 연륜은 어쩌지 못 한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는 절박한 야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영화입니다. 이미 별 결함 없이 잘 굴러가는 자동차처럼 탄탄한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축한 마블과 달리, DC 익스텐디드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한참 뒤처져서 '저스티스리그'와 그밖에 솔로 히어로 영화로 판을 다지려는 상황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러니 DC와 잭 스나이더는 이 영화 안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영화는 주된 갈등에 초점을 맞추며 다음에는 이런 걸 보여줄 거야, 하고 살짝살짝 간질인다기보다, 이 영화 다음에 DCU에 이런저런 멋진 히어로가 나올 거야,라는 걸 줄줄이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입니다.
DC와 워너브라더스로서는 이전에 소개된 적이 없었던 히어로들을 플롯 한복판에 뜬금없이 욱여넣기보다는 마블처럼 쿠키 등을 통해 궁금증을 자아내는 방법을 썼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스칩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미덕이 턱없이 부족했다면 너무 순진한 충고일까요? 정말 어쩔 수 없는 경험의 차이로 보이네요.
5. 렉스 루터, 둠스데이, 바론 지모 등등 메인 빌런의 설득력의 차이!
빌런의 역할도 문제였습니다. 두 영화 다 공히 제목에서부터 슈퍼히어로들간의 내전을 선포하고 있는데, 그들 사이의 갈등이 관건이지, 빌런의 역할은 두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다른 영화들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메인 빌런으로 수퍼맨의 전통적인 숙적 가운데 하나인 렉스 루터를 배치했습니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쳐도, 이 영화의 나머지 대부분에서와 마찬가지로 렉스 루터가 왜 두 히어로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하는지, 동기와 목적이 무엇인지도 애매모호하고, 두 영웅 사이를 효과적으로 이간질했다는 감상도 불러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제목대로 영화를 끌어나가려고 했다면 렉스의 역할은 더 작아야 했습니다. 뭘 하고 뭘 하려는지 관객으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도 않는 캐릭터의 비중 치고는 너무 컸습니다.
이에 반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제목대로 스토리를 이끌어나갔습니다. 즉 히어로들의 싸움을 그렸습니다. 히어로들간의 분란을 그리면서 영화의 규모를 줄이며 짜임새를 도모했고, 바론 지모 대령이라는 원한과 복수심에 찬 인간 악당을 내세웠습니다. 영화에서 그의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갈등이 왜 일어났고 그 갈등을 부추기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반면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의 마지막 둠스데이의 등장은 슈팅 비디오게임의 막판에 등장하는 무지막지한 최종 보스라는 것 말고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었던가 싶네요!
6. 유머의 내공, 캐릭터 살리기의 솜씨에 확연한 질적 차이가 있다!
그렇습니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결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제목이 왜 '배트맨 대 슈퍼맨'인지도 관객들에게 설득시키지 못했습니다. 제목이 배트맨 대 슈퍼맨인데, 둘이 직접 맞붙어 실제적으로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5분 남짓에 불과했습니다! 대화도 하지 않고 액션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굳이 따지고 들자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도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없지 않습니다. 블랙 위도우가 캡틴 아메리카에게 등을 돌린 게 예고편을 볼 때부터 좀 느닷없이 느껴지기도 하고, 스파이더맨과 앤트맨의 등장은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플래시와 아쿠아맨과 원더우먼이 등장한 방식과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기도 하며, 마리사 토메이가 분한 피터 파커의 숙모가 문득 핫해져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페퍼의 자리를 대신하며 아이언맨과의 러브라인을 형성하게 되는 것도 꽤 뜬금없어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 몇 년간에 MCU가 쌓아온 저력이기도 하겠네요. 예컨대 스파이더맨과 앤트맨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개그 캐릭터의 역할이었는데, 그 두 명의 캐릭터가 등장해서 블록버스터 액션 장면에 갖춰진 유머 코드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공항 전투 장면을 얼마나 빛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반면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플래시와 아쿠아맨은 뭐하려고 나왔던가 싶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DCU의 새출발은 첫 단추가 너무도 잘못 끼워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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