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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할리우드 영화 특집

역사상 가장 사랑스런 영부인을 만난다! 나탈리 포트만의 눈부신 외모, 영화 '재키'의 실제 주인공 재클린 케네디의 믿지 못 할 깜놀 사실 6가지

나탈리 포트만이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로 분해 눈부신 미모를 선사하는 영화 '재키'가 개봉합니다.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부인일 수도 있는 재클린 케네디에 대해 몰랐던 깜놀 사실 몇 가지를 공개합니다. 



1. 결혼에는 관심없었던 바람둥이 케네디, 약혼자가 있었던 재키, 케네디와 재키의 첫 만남

재키는 1929년 뉴욕에서 재클린 리 부비에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기자로 일하던 시절인 1951년 재클린 부비에는 예일 대학교 출신의 주식 브로커이자 뉴욕 상류층 자녀이기도 했던 존 G. W. 허스티드와 만나 약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재클린과 허스티드의 약혼이 결혼까지 이어졌다면 재클린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부인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했을텐데요, 근데 다행스럽게 이 두 사람의 약혼을 깼던 사람이 바로 존 F. 케네디였답니다. 


당시 매력만점의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이었던 케네디는 한 사교 모임에서 재클린 부비에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재클린은 당시 약혼자가 있었던 몸이었지만 바람둥이 케네디는 그녀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했고,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취침 축하 무도회 때 재클린을 동반하면서부터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됩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케네디는 매사추세츠 사교계의 유명한 바람둥이었고, 케네디가 재클린은 결혼 대상자로 생각하지 않았던 반면, 재클린은 케네디를 결혼까지 염두에 두고 만나게 되고, 결국 대통령을 꿈꾸던 케네디에게 결혼은 필수였고, 그 대상자로 재클린만한 여자도 없었기에 두 사람은 결국 결혼에 이르게 됩니다. 



2. 도색잡지 '허슬러'에 실렸던 재키의 나체 사진

재키는 플레이보이와 함께 미국 성인잡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허슬러'에 나체 사진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케네디 사후 1972년 당시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결혼했던 재키는 오나시스의 그리스 개인 섬에서 누드로 선탠을 즐기다 파파라치에게 그 장면을 찍히게 됩니다. 


재키의 누드 사진은 처음에 흑백사진으로 유럽 성인잡지에 팔렸지만, 가치를 알아본 허슬러의 래리 플린트가 1975년에 수 백만 달러를 주고 되사서 칼라 사진으로 다시 총천연색으로 되살리게 됩니다. 재키의 누드가 실린 잡지는 평소 허슬러 판매량보다 몇 백만 부 이상 더 불티나게 팔렸고, 래리 플린트는 재키의 누드 사진을 산 것이 자신의 인생 최고의 투자였다고 회고했습니다. 



3. 앤디 워홀 유품에서 발견된 재키의 또 다른 누드 사진

근데 더욱 재밌는 것은 재키의 누드 사진은 파파라치가 유출한 허슬러 버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스스로 유출한, 그것도 그 유명한 아티스트 앤디 워홀에게 직접 유출한 누드 사진이 또 있었다고 합니다. 


지난 2009년 팝 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이 사망한 이유 유품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재키의 나체 포스터가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 사진은 오나시스가 직접 사진사를 고용해서 나체로 수영하는 재키의 사진을 찍었던 것이고, 이 사진에 서명을 해서 장난스레 재키가 앤디 워홀에게 보냈다는 것이죠. 


앤디 워홀은 생전 재키를 주제로 한 판화를 다수 제작했는데, 그 중 지난 2011년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6명의 재키(Sixteen Jackies)'는 기2,024만 달러(한화 약 230억원)의 경매가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4. 에미상을 수상한 영부인

1941년 당시 11살의 재키가 엄마와 함께 백악관 투어를 했을 때, 재키는 그런 역사적인 건축물의 가구와 장식이 왜 이렇게 모던한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지녔고, 이후 20여 년 후 백악관의 안주인이 된 재키는 백악관의 어울리지 않은 모던 인테리어를 역사와 품격에 어울리는 앤틱풍으로 바꾸기게 됩니다. 


일 년여의 기간 동안 백악관의 역사를 온전히 담을 수 있도록 백악관 복원에 매달린 재키는 그 과정을 모두 영상으로 담았고, 1962년 발렌타인 데이 때 CBS를 통해 공개된 재키의 백악관 복원기는 무려 5,600만 명의 시청자를 불러 모았고, 이듬해 에미상에서 재키는 영부인 최초로 공로상을 받게 됩니다. 아직도 케네디 박물관에는 재키의 에미상 트로피가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5. 마이클 잭슨의 자서전 편집장이 바로 재키!

1988년 2월 1일 마이클 잭슨의 유명한 자서전 '문워크'가 발매되었습니다. '문워크'는 마이클 잭슨의 가족사를 포함해서 음악 이야기, 배드 시절까지를 담은 본격적인 마이클 잭슨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었습니다. 근데 당시 이 책의 책임 편집을 맡은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바로 재키였답니다. 


재키는 존 F. 케네디의 사망과 재혼했던 오나시스와 이혼 절차를 밟던 중 1975년 갑작스레 오나시스가 사망하게 되면서 미국 뉴욕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백악관 시절 최측근의 추천으로 더블데이 출판사에 취직하게 됩니다.


당시 재키는 주4일 근무에 200달러 (한화 약 2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더블데이 출판사의 편집장으로 일하게 되는데, 보그 매거진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던 경험을 되살려 여러 책들을 편집하게 되고, 그 중 재키가 책임 편집을 맡은 책 중의 하나가 바로 마이클 잭슨의 자서전 '문워크'였답니다. 



6. 디자이너 발렌티노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웨딩 드레스

재키는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영부인이자 패션 아이콘이었습니다. 1964년 이탈리아 보그 편집장을 통해 디자이너 발렌티노를 알게 된 재키는 이후 발렌티노를 즐겨 입게 되는데,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애도기간 동안 입었던 블랙앤 화이트 디자인의 옷 6벌도 발렌티노였고, 1968년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결혼했을 때 입었던 웨딩드레스 역시 발렌티노였습니다. 



오나시스와의 결혼식에서 입었던 재키의 투피스 스타일의 웨딩드레서는 케네디 대통령과의 결혼식에서 입었던 것 같은 화려한 롱드레스는 아니었지만, 품위와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1960년대 특유의 경쾌함이 살아있는 디자인으로 1968년 한 해 동안 발렌티노의 이름을전 세계에 알린 옷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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