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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할리우드 스타 특집

엘비스 프레슬리, 모건 프리먼, 클라크 게이블 등등, 군인에서 배우로, 군대에 다녀온 할리우드 스타 톱 10

한국에서의 군대 복무 경험을 밑바탕 삼아 무술인으로, 그리고 무술인 출신 할리우드 스타 배우로 성장한 척 노리스부터, 9/11 이후 자원 입대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배우 아담 드라이버, 그리고 아내의 죽음 이후 비탄에 빠져 전쟁에 참여했던 클라크 게이블까지 '군대에 다녀온, 군 복무 경험이 있는 할리우드 스타 톱 10'을 꼽아 봤습니다.

 

 

10. 척 노리스

척 노리스가 군대에 있었다는 건 크게 놀라울 일이 아니죠. 할리우드 궁극의 거친 사내 중 한 명으로서 노리스는 1958년에 미국 공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러고는 공군 경찰로 한국에서 복무했죠. 그는 그 경험을 잊을 수 없으며 오늘날까지도 아주 소중하게 여긴답니다. 규율의 기본을 배우고 세상을 향한 눈을 뜨게 해주었다구요.


그가 귀하게 여기는 경험이 한 가지 있는데, 한국에 있으면서 지역 사람들이 무술을 연마하는 모습을 관찰한 것이었답니다. 그는 훈련 첫 주에 어깨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고, 산책을 나갔다가 마을 사람들이 회전 힐 킥을 연출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 광경이 하도 신기해서 유도 교사인 안 선생님이라는 사람에게 자기에게 기술을 가르쳐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습니다. 그 무술은 한국의 옛 맨손 무예인 당수도라고 불리는 것으로, 한국을 떠날 무렵에 척 노리스는 당수도 검은띠를 땄고, 유도로는 갈색띠를 땄습니다. 할리우드 스타 척 노리스를 만든 것은 한국에서의 군대 복무 경험이었네요.

 

 

9. 모건 프리먼

모건 프리먼 같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라면 군대에 절대 갈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상남자들이 몰려 있는 군대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복무 경험에서 아주 큰 도움을 얻었다고 하네요. 군대 생활을 해보면 때로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군대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수도 있구요. 그게 모건 프리먼에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1955년에 모건 프리먼은 하늘을 나는 꿈을 실현하려고 미 공군에 입대했습니다. 심지어 잭슨 스테이트 대학교의 연극과 장학금을 거절하기까지 했습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요. 결국 그는 전투 조종사로 훈련을 받았고, 이내 자신이 비행기 조종을 싫어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후 모건 프리먼은 직감을 따라 4년 후에 공군을 떠납니다. 스타덤에 이르는 기나긴 길에 오른 끝에 성공적인 배우의 길을 걷게 됩니다. 미 공군 입대 복무 경험이 없었다면 배우의 길이 자신의 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모건 프리먼이네요.

 

미 공군 복무 시절의 모건 프리먼

 

 

8. 클린트 이스트우드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고 하면 이상할 배우죠. 물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영화 속 더티 해리처럼 전장에서 적들을 상대해서 권총을 쏴댄 것은 아닙니다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제복을 입고 있는 것만 상상해도 꽤 멋진 일 아닌가요?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군복을 입을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드 기지에서 수영 가르치는 일을 했기 때문이죠. 그래도 그의 수영 기술은 쓸모가 꽤 많았답니다. 한번은 해군 어뢰 수송 비행기에 탑승한 적이 있는데, 엔진이 고장나면서 비행기가 바다로 추락했습니다.

 

그냥 바다가 아니었답니다. 얼어죽기 십상인 11월의 바닷물이었고, 게다가 그곳은 백상어가 들끓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조종사를 도와 해안까지 2킬로미터 정도를 헤엄쳐 목슴을 건질 수 있었답니다. 

 


7. 스티브 맥퀸

'황야의 7인', '타워링' 같은 영화로 유명한 스티브 맥퀸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까닭에 반항아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배우생활을 하는 내내 줄곧 그런 반항아 이미지를 유지했죠. 곡예 조종사와 창녀의 아들이었던 스티브 맥퀸은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947년에 해병대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습니다. 군대에서도 반항적인 성정은 드러났고, 명령에 잘 복종하지 못하고 그 때문에 일곱 번을 이병으로 강등당합니다.

 

게다가 한 번은 주말 휴가를 나갔다가 그냥 여자친구와 2주간 휴가를 보내고 맙니다. 당연히 군대는 탈영변 신분이 된 스티브 맥퀸을 붙잡았고, 그는 저항을 하다가 41일간 영창에 갇힙니다. 하지만 영창에서 보낸 시간 덕분에 그는 거듭나며 새로운 인생을 살기도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또 한번은 훈련중에 배가 모래톱에 부딪쳐 부대원들이 물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병사들이 허우적거렸고, 스티브 맥퀸이 물에 뛰어들어 다섯 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합니다. 이 일로 스티브 맥퀸은 명예 전역을 했고, 나중에는 해병대에서 보낸 시간을 아주 좋게 기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스티브 맥퀸을 만든 해병의 추억입니다.

 

 

6. 험프리 보가트

영화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도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그렇다고 새로운 관심사를 찾는다거나 직업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1918년에 미 해군에 입대해 미국과 유럽 사이를 오가는 부대들을 운송하며 대부분의 군 생활을 했습니다.

 

해군 생활 중 험프리 보가트는 바로 자수하기는 했지만 부대를 이탈한 적도 있었답니다. 즉시 자수했기에 탈영으로 처리되지는 않았지만 독방에서 3일간 빵과 물만 먹으며 구금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험프리 보가트는 상당히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오면서 그는 집안이 기대하는 가치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가 달라졌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위선과 속물 근성을 혐오했고, 선적 처리나 접착제 세일즈맨처럼 단순한 일을 하며 인생을 배웠고,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런 인생을 밑천 삼아 후에 대배우가 됩니다.

 

 

5. 숀 코네리

숀 코너리는 인생을 살면서 아주 많은 일을 거쳤습니다. 우유배달원, 인명 구조원, 시체 닦는 일 등등. 그는 또 열여섯 살의 나이에 영국 해군에 입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는 몇 년 안 된 후에 미래의 제임스 본드가 되리라는 걸 꿈에도 생각지 못했겠지요.

 

숀 코네리는 해군 복무 시절에 모든 병사들이 그러듯이 문신도 새겼습니다. 하지만 해골이나 불꽃, 단검같이 거친 그림을 새겨넣는 대부분의 해군과 달리 숀 코네리는 자신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걸 잉크로 새겼습니다. 하나는 '엄마와 아빠', 다른 하나는 '스코틀랜드여 영원하라'입니다.


하지만 3년이 흐른 후에 위궤양이 심해지면서 전역을 당하게 됩니다. 한때 너무 심해져서 목숨이 위험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집에 돌아와서는 에든버러에서 벽돌공으로 일하다가 후에 보디빌더가 되고, 그 일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모델과 배우 일로 옮겨가게 되었답니다.

 

 

4. 레너드 니모이

스타트렉의 원조 스팍 레너드 니모이는 군 출신입니다. 1973년에 일어난 화재로 그의 개인 기록은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그를 알았던 사람들과 몇 가지 남은 자료로 그의 군 경력에 관한 스토리가 남아 있습니다. 레너도 니모이는 육군에 입대해서 조지아 주의 포트 맥퍼슨에서  주둔했으며, 병장까지 진급해서 올라갔다 1955년에 제대를 했다고 합니다.

니모이는 소대에서 아주 뛰어난 군인이었다고 하는데, 같은 소대에 우연찮게도 배우인 켄 베리가 있었습니다. 그 둘은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케리는 연기에 욕심이 잇는 니모이의 소망을 들어주며 꿈을 키우게 해줬다고 합니다. 끼가 있었던 레너드 니모이는 군 생활 중 행사에서 진행자로도 많은 활약을 했다고 하네요.

 

 

3. 엘비스 프레슬리

할리우드 유명 스타의 군 복무 경험으로 쳐서 엘비스 프레슬리만큼 유명한 사람은 없을 듯 합니다. 1957년 말 징집영장을 받은 엘비스 프레슬리는 연예 사병 근무를 제안한 국방부의 제안을 거부하고 일반 전투병으로 서독 제3 기갑사단에서 18개월 동안 근무를 합니다.

 

군 복무 중에 엘비스는 미래의 아내 프리실라를 만나기도 했는데, 그러니 징병을 당하기는 했어도 전부 소용없었던 건 아니네요.

 

 

2. 아담 드라이버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카일로 렌 아담 드라이버는 2001년 미국 뉴욕에서 9/11 테러가 일어난 후 주위 사람들과 입대에 대한 대화를 끊임없이 했습니다. 그의 친구들, 가족들, 모든 사람과 입대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해병대에 입대하겠다는 아담 드라이버를 적극적으로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 드라이버의 머릿속에는 이미 군인으로 나라를 위해 싸워야겠다는 생각만 있었고,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나서 결국 아담 드라이버는 미국 해병대에 입대합니다. 운동 능력도 뛰어난 편이 아니었고, 남자들끼리의 형제애를 나누는 곳에는 어디 한 군데 속해본 적이 없었음에도, 용케도 아담 드라이버는 해병대 문화에 잘 적응을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산악 오토바이 사고로 흉골에 부상을 입습니다. 그 와중에도 격렬한 훈련을 마다하지 않고 임했습니다. 동료 군인들에게 괜찮다는 걸 보여주려구요. 하지만 2년 동안 복무하면서 전장에는 나가지도 못했고, 최종적으로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되며, 이후 군인 시절의 강인한 경험을 바탕으로 배우로 성공합니다.

 

 

1. 클라크 게이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케이블은 이미 스타가 된 후 자원입대를 한 경우입니다. 클라크 게이블은 1942년 1월 아내였던 인기 코미디 배우 캐롤 롬바드와의 결혼 3주년 기념 파티를 집에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만 아내의 비행기 추락 사고 사망 소식을 듣게 됩니다.

 

캐롤이 죽은 뒤 비탄에 잠겨 있던 클라크 게이블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항공대 장교로 입대하여 유럽 전장에서 비행기를 몰고 히틀러에 맞서 싸웠다고 합니다.

 

공군 장교 시절의 클라크 게이블

 

클라크 게이블의 군 복무 시절은 흥미로운 사건이 아주 많은데, 한 번은 히틀러가 미국의 유명 배우 클라크 게이블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유럽 전선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클라크 게이블을 생포하는 대가로 엄청난 돈을 내걸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내의 죽음에 자원 입대한 클라크 게이블은 항공대 생활 중 비행기를 몰고 아내가 추락했던 라스베가스 산을 다년간 뒤져서 아내 캐롤의 추락 현장을 찾아 아내가 착용하고 있었던 스카프 조각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죽은 아내의 스카프 조각을 죽을 때까지 애지중지 아끼며 함께 묻어달라고 했던 클라크 게이블 최고의 로맨티스트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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