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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할리우드 스타 특집

이름의 비밀, 영원한 로미오의 리즈 시절 꽃미모 전설, 타이타닉 아카데미 시상식 불참 이유 등등,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특급 비밀 20가지 ①


영원한 로미오 디카프리오에서 '타이타닉'으로 킹 오브 더 월드에 올랐던 디카프리오, 그리고 유달리도 상복이 없는, 오죽했으면 '아카데미가 잘도 비켜가는 배우 1위'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드디어 기어코 2016년 '레버넌트'로 아카데미를 수상합니다.

 

그리고 현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환경운동에 매진하겠다며 은퇴를 선언했지만, 할리우드의 의자왕이라는 호칭답게 여전히 금발의 모델 연인들을 계속해서 갈아치우면서 왕성한 열애설을 퍼뜨리고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20년 친구라는 케이트 윈슬렛과의 열애설까지 나왔는데요. 어떻게 된 일인지 레오의 탄생에서 현재까지를 모조리 짚어봅니다. 그 첫 번째입니다. 


 

 1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이름의 탄생! 

1974년 11월 11일 캘리포니아 LA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이름은 설마 했겠지만, 실제로 어머니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름을 따서 작명한 것이라고 합니다. 


법률 사무소 직원이었던 어머니 이르멜린은 디카프리오를 임신했을 때,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관이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르네상스 회화 컬렉션을 자랑하는 미술관인 이탈리아의 우피치 미술관에 간 적이 있는데, 당시 다빈치의 작품을 감상하던 때 태아의 발차기 태동을 느껴서 레오나르도란 이름을 지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다소 마마보이이기도 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놀리는 사람들은, 드라마 퀸 엄마 덕에 까딱했으면 아들 이름이 보티첼리 디카프리오, 라파엘로 디카프리오, 렘브란트 디카프리오가 될 수도 있었겠군 하는 드립을 던지곤 한답니다. 

 

 

 2  어머니의 재혼, 의붓형 애덤 파라 그리고 공부 따위 내던진 배우 지망생 디카프리오 

디카프리오가 한 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LA 외곽지역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던 중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 디카프리오에겐 의붓 형 애덤 파라의 존재가 생기게 됩니다. 어릴 적부터 이미 다수의 CF와 TV에 출연했던 아역배우였던 애덤 파라는 디카프리오가 배우를 꿈꾸는 결정적인 동기부여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데요. 


재혼 이후 어머니는 왕복 네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거리를 운전해서 아들을 초등학교에 통학시켰고, 고등학교는 상류층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교육열을 불태웠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디카프리오는 브레이크 댄스나 저질농담을 연습하며 공부 따위 내던지고 찬란한 스타를 꿈꾸던 배우 지망생이었다고 합니다. 

 

 

 3  텔레비전 배우 시절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CF 모델 생활을 하던 10살의 디카프리오에게 에이전트는 보다 미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예명이 어떻겠냐며 레니 윌리엄스라는 이름을 권했으나 디카프리오는 일언지하에 거부했다는 얘기가 있죠. 


장난감 CF에 출연하던 디카프리오는 1950년대 인기 드라마 '래시'의 속편인 '뉴 래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 '아웃사이더'의 동명의 TV 스핀오프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특히 론 하워드가 각별하게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인 '페어런트후드'의 1990년 버전 드라마,  1984년부터 1993년까지 무려 2,000편이 넘는 에피소드가 방영되었던 일일드라마 '산타 바바라', ABC의 1990년대 인기 패밀리 드라마 '그로잉 페인스'에 출연했고, 모두 영 아티스트 어워드에 노미네이션되며 차세대 하이틴 스타 자리를 예약하게 됩니다.

 

 

 4  영화 데뷔작 '크리처스 3'와 로버트 드니로와의 만남 '이 소년의 삶'

텔레비전 하이틴 스타로 발돋움한 디카프리오에게 할리우드의 안테나가 미치게 되고, 디카프리오는 드디어 먹성 좋은 외계 괴생명체의 공포를 그린 시리즈 영화 '크리터스 3'의 주연으로 영화 데뷔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크리처스 3'는 데뷔에 의미가 있을 뿐인 흑역사에 가까운 출연작이었고, 디카프리오의 연기력이 본격 인정을 받게 된 작품은 로버트 드니로와 함께 한 1993년작 '이 소년의 삶'입니다.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엄마 앞에 나타난 나쁜 남자 로버트 드니로도 인정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일각에서는 드니로 이상이다라는 평가를 이끌어내며 확실한 스타성을 선보이게 되죠.

 

 

 5  '길버트 그레이프'로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노미네이션

겨우 두 번째 장편영화 출연작인 '길버트 그레이프'의 뇌성마비에 걸린 역할의 열연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야구로 치면 데릭 지터급의 눈부신 앞날을 예고합니다. 


그러나 첫끗발이 개끗발이라고, '길버트 그레이프' 이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를 포함하여, 비평가협회상, 미국 배우조합상 등에서 20년 동안 총 31차례 각종 주조연상에 노미네이션이 되었지만 겨우 3차례 수상을 거두는 데 그치고 맙니다.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로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는 레오>


체감이 잘 안 될 터이니 비교 체험 극과극을 동원해보자면, '헝거 게임'의 제니퍼 로렌스는 데뷔 이후 겨우 3년 동안 161회 주요 어워드 노미네이션에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를 비롯하여 모두 80차례 수상을 거두며 타율이 5할에 가까운 반면, 디카프리오의 타율은 채 1할도 못 되는 수준입니다. 


아뿔싸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뇌성마비아 아니를 그토록 자연스럽게 연기하던 19살의 연기파 배우에게 아카데미가 가장 싫어하는 배우, 아카데미가 애써 피해가는 배우 1위라는 오명이 달라붙을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요?

 

 

 6  할리우드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한 디카프리오! 

'길버트 그레이프' 이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할리우드 메인스트림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여유롭게 진입하게 됩니다. 


당시 '원초적 본능'으로 최고의 섹시 스타로 각광받던 샤론 스톤의 주연작 '퀵 앤 데드'의 총잡이 피 헤롯 더 키드, '토탈 이클립스'에서의 천재 시인 랭보, 줄리엣 루이스, 마크 월버그와 함께 주연을 맡은 '바스켓볼 다이어리'의 뉴욕 뒷골목의 반항아까지, 디카프리오는 출연하는 영화마다 저 앳된 얼굴의 미소년은 도대체 누구더냐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며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게 되죠.

  

 

 7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레전드 청춘스타 등극 

1968년 프랑코 제페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올리비아 핫세가 역대급 줄리엣을 연기했다면, 1996년 바즈 루어만 감독이 MTV 스타일을 빌어 만든 '로미오와 줄리엣'의 디카프리오는 레전드급의 로미오를 선보입니다. 


소위 디카프리오의 리즈 시절 중에서도 가장 말갛고 눈부신 리즈 시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블록버스터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박수치던 일이 실례가 되지 않았던 당시 영화관람 분위기에서, 여성 관객들이 디카프리오와 눈만 마주치기만 하면 여기저기서 소리를 질러댔다는 전설의 영화였죠.

 

 

 8  '타이나틱'으로 킹 오브 더 월드 등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디카프리오가 얼굴로 기억이 되었다면, '타이타닉'의 디카프리오는 행동거지로 기억이 됩니다. 


매튜 매커너히를 추천하는 스튜디오에 맞서 끝까지 디카프리오를 고집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 보답이라도 하겠다는듯,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승차칸 러브씬, 뱃머리 드라이브, 판자 위 연인과의 애절한 작별 등 혼신의 연기를 거듭 펼치며 전세계에 레오 신드롬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나 역대 최다 14개 부문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타이타닉'의 성과에도, 남우주연상이 노미네이션에 빠져 아주 크게 빈정상한 디카프리오는 시상식에도 참가하지 않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수상 소감으로 "아 앰 더 킹 오브 더 월드"를 외치는 장면을 집에서 곱씹는 처지가 되었다고 하죠. ㅠㅠ

 

 

 9  대니 보일의 '비치'로 2,000만 달러 배우 등극

'트레인스포팅'으로 연출 능력을 인정받은 영국이 낳은 천재 감독 대니 보일은 1999년 할리우드 거대자본을 빌어 '비치'를 연출하게 되는데, 스튜디오의 압력이 있었던가, 당시 캐스팅 약속을 해놓았던 이완 맥그리거를 등지고 제작비의 40퍼센트인 2,000만 달러를 개런티로 들이는 모험수를 두면서까지 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를 주연으로 쓰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전세계 시장에서 1억 4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디카프리오 파워를 증명했지만, '타이타닉' 이후의 디카프리오의 작품 치고는 그다지 임팩트가 없었다는 게 중론이긴 합니다.

 

 

 10  '아이언 마스크' '갱스 오브 뉴욕' '캐치 미 이프 유 캔'

'타이타닉' 이후의 디카프리오는 '아이언 마스크'의 루이 14세와 쌍둥이 형제 필립의 1인 2역,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대작 '갱스 오브 뉴욕'의 리얼 갱스터 암스테르담 발론, 그리고 누가 봐도 딱 아카데미표 영화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 에버네일 주니어까지, 거의 작정하고 아카데미를 겨냥한 영화만 고른다는 인상이 들 정도의 출연작을 고수합니다. 


그러나 '캐치 미 이프 유 캔'으로 고작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할 정도의 범타에 그치고 마는데요. 이 정도면 거의 아카데미가 일부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피해간다는 음모이론까지 등장한대도 뭐라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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