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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이슈

신성일 폐암 3기, 엄앵란과의 결혼, 바람, 이혼, 졸혼에서 故 김영애와 아이, 낙태까지 파란만장 인생사

1960년대 은막의 스타 배우 신성일이 폐암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것도 초기가 아닌 폐암 3기라서 회생률이 높다고 하더라도 40%에 불과하다고 하는 안타까운 소식인데요. 


그럼에도 평소 몸관리를 잘했고, 담배도 끊었는데 폐암이라니 어쩔 수 없는 하늘의 뜻인가보다는 긍적적인 생각으로 병마와 싸워나가겠다는 의지를 펼쳐보였다고 하는데요. 신성일의 전성기 배우 시절부터 동료 스타 엄앵란과의 결혼, 그리고 바람, 이혼 아닌 졸혼, 故 김영애 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그리고 낙태 등등  배우 신성일의 파란만장 인생사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본명은 강신영, 신성일은 그렇다쳐도, 강신성일은 또 뭐지?

배우 신성일은 본명이 강신영, 1937년 대구 출생으로 경북고등학교 건국대학교를 나왔습니다. 영화 배우 당뷔 당시 신상옥 감독의 추천으로 '신성일'이라는 예명을 쓰게 된 것이며, 그 외 '강신성일'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있습니다. 


강신성일이라는 이름은 1996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아예 이름 자체를 강신성일로 개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본명은 강신성일입니다. 선거에서는 본명을 써야 하는데 과거 1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당시 본명 강신영으로 나갔더니 배우 신성일인지 몰라서 득표에서 큰 손해를 봤다는게 개명의 이유였다고 하네요. 



 2  1960년대 충무로의 아이콘, 한국의 알랭 들롱

신성일은 1960년대에서부터 1970년대의 한국 영화를 상징하는 아이콘 그 자체입니다. 안성기, 한석규와 함께 한 시대 원 톱 영화 배우 위치를 경험해본 3인방 중의 맏형이며, 중년 신사 이미지가 강했던 1960년대 후반 당시의 배우들과는 달리 조각같은 미남 이미지 자체와 반항아적인 이미지로 한국의 알랭 들롱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신성일은 영화 출연료도 2위와 일고여덟배 차이의 독보적인 1위를 찍었을 뿐 아니라, 당시에는 하루에도 몇 편씩 영화를 겹치기 촬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지라, 신성일 본인은 물론이고 한국 영화사에도 도대체 신성일이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는지 정확한 필모그래피가 잡혀있지 않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있을 정도니 신성일이 얼마나 엄청난 인기배우였는지는 말해봤자 입만 아프겠네요. 



 3  But 얼굴이 90%, 연기력은 그다지

신성일은 진짜 얼굴 하나로 한국 영화계를 평정한 배우였다고 해도 허언이 아닌게, 사실 신성일은 알랭 들롱에 비견되는 독보적인 한국의 미남 배우, 제임스 딘에 비교되는 독보적인 한국의 반항아 무비스타였지만, 그런 점에 비해 연기력은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오죽했으면 가장 최근 노익장을 과시하며 출연한 2016년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에 신성일이 출연 당시 관객들이 어떻게 이런 배우가 한국 영화계의 레전드 소리를 듣는지 연기력에 혹평을 가하기도 했던 일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게다가 목소리도 별로여서 모두 성우를 썼다는 얘기도 있죠)



 4  동료 배우 엄앵란과의 세기의 결혼식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 신성일은 영화 '맨발의 청춘'에 함께 출연하며 인연을 맺은 동료 배우 엄앵란과 1964년 서울 모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당시에는 스타들이 비공개 결혼식 이런 풍토는 없었던지라, 엄앵란의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는 배우였음에도, 신성일이라는 이름만으로, 유명 연예인, 기자, 일반인 등 무려 4,000명 이상의 하객이 몰리는 최고의 결혼식으로 유명했습니다. 


결혼식에 들어가려는 일반인들이 결혼식 입장표를 암거래하는가 하면, 결혼식을 보지 못 한 사람들이 호텔 앞에서 호텔 측에 거세게 항의를 하며 시위를 벌이는 등 현재까지도 한국 스타 결혼식으로는 최고의 '세기의 결혼식'으로 남아있는 장면입니다. 



 5  신성일의 정치 도전, 그러나 후회막심했던 과거

배우로서 최고의 커리어를 보낸 신성일은 이후 정치 도전에 나서게 됩니다. 신성일은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박경원 전 장관의 특별보좌관으로 발탁되며 정치 입문을 햇고, 위의 이름을 말할 때도 잠시 거론했듯 신성일은 강신영이라는 본명으로 1981년 11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합니다. 강신영이라는 본명을 쓰니까 배우 신성일인줄 못 알아봐 표가 많이 깎였다는 분석도 이래서 나온 것입니다. 


이후 신성일은 자신의 본명과 예명을 혼합해 만든 강신성일이라는 이름으로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뒤 한나라당 총재특보를 지내게 됩니다만, 그러나 17대 때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려다 포기하게 되는데, 이때 불거진 사건이 바로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광고로비 사건입니다. 



<국회의원 당선 당시 부인 엄앵란 볼에 뽀뽀하는 신성일>


신성일은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광고로비 사건이 불거지며 당시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 공천을 받지 못하는데, 결국 신성일은 이 일로 2005년 2월 뇌물수수죄로 구속되어, 징역 5년과 추징금 1억 8,700만 원을 선고받고 2년여를 복역한 뒤 출소하게 됩니다. 


신성일은 그런 정치 생활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영화배우의 인기에다 권력의 날개를 하나 더 다는 셈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해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며, 오히려 과거보다 더 위축됐다며, 정치는 자신의 생리에 맞지 않았다며 정치활동을 한 것을 크게 후회했다고 합니다.



 6  고(故) 김영애 아나운서와의 관계

신성일은 2011년 출간된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를 통해 과거 고(故) 김영애 아나운서와의 관계를 털어놓아 네티즌들에게 충격과 배신을 안겨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신성일은 "톱스타 신성일이 100명이 넘는 여배우와 영화를 찍었는데 스캔들이 없다 애인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겠느냐며, 나는 그런 위선, 그런 거짓말 못한다"는 논리 아래 바람을 피웠던 사실을 공개했고, 심지어 자서전에 아내 엄앵란도 모르는 사진이라며 고 김영애 아나운서의 비키니 사진을 공개해서 큰 파문이 일기도 했습니다.


<신성일 고 김영란 아나운서 비키니 사진 공개>


고 김영애 아나운서는 과거 동아방송 아나운서로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석사과정을 마친 재원으로, 1985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신성일과는 1970년 처음 만나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얼마전 사망한 배우 김영애 씨가 아닙니다. 헷갈리지 말아주세요)


근데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서전에서 신성일이 고 김영애 아나운서와의 사이에 아이까지 갖고, 낙태를 했다는 말까지 세세하게 털어놓았고, 그리고 발언 당시 엄연한 결혼 상태임에도, 고 김영애 아나운서를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자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자신은 결혼 이후에도 애인이 항상 있었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이건 뭐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생활 이상가는 발언이라 충격은 더욱 컸는데요. 


그런 신성일의 발언에 네티즌들은 망자의 허락도 없이 죽은 애인을 자서전 판매에 동원한 노이즈 마케팅, 추억팔이라며 큰 비난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7  신성일, 엄앵란 졸혼

그런데 결혼 생활 중에도 신성일이 부인 엄앵란을 두고 애인이 있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하고 살았던 이유는 바로 신성일 엄앵란 두 사람의 결혼 생활 55년 중 45년은 이미 이혼을 하지 않고 따로 살아온 졸혼 생활이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성일과 엄앵란은 50년이 넘은 결혼기간 중 별거한 기간만 45년인데, 엄앵란은 신성일이 자신과 살면서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만나기도 했지만 절대 이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바 있으며, 신성일 역시 이혼할 생각이 없으며, 이렇게 떨어져 지내며 과거 함께 지냈던 추억이 생각나 더 애큿해진다며, 사랑하면 다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고 다툼도 없다며, 떨어져 지내는게 좋다, 졸혼이라는 말이 유행하던데, 따지고 보면 졸혼도 내가 제일 먼저였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8  엄앵란 유방암, 신성일 폐암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

현재 배우 신성일 씨는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신성일의 아내 엄앵란 역시 2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는데, 당시 신성일이 엄앵란의 병실을 찾아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했던 것에 엄앵란은 수술 받고 깨어나니 웬 남자가 손을 잡고 있길래 봤더니 그렇게 욕하던 영감이었다며 웃으며 얘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두 분이 지금 현재 졸혼 상태, 그것도 40년이 넘게 떨어져 살았지만, 신성일의 말따라 떨어져 지내서 오히려 더욱 애틋하고 용서가 되고 이해하는 관계가 되었다고 봅니다. 신성일 역시 현재 폐암 치료 과정에 따라 수술을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신성일 씨가 수술실에 들어갈 때면 2년 전 그랬던 것처럼 아내 엄앵란 씨가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두 분 모두 암과의 싸움에서 빨리 회복돼서 건강한 모습 다시 한 번 보여주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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