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은 있습니다. 제아무리 거장 감독이라고 해도 나무에서 떨어진 사례는 영화계에 꽤나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 좋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비평적으로 찬사를 받는 감독들이 만들었던 영화들 중에서 보기 민망할 만큼의 망작을 추려보았습니다. 상도 많이 받고 박스오피스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감독들이나 평범하다 못해 그냥 순전히 못 만들었던 영화들입니다.
10. 찰리 윌슨의 전쟁 - 마이크 니콜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을 아시는 분이라면, 고전이 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부터 보시기를 권하겠습니다. 배우들의 감독이라고 불리는 마이크 니콜스는 배우들에게서 최고의 연기를 뽑아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찰리 윌슨의 전쟁’은 연출 기술적인 면이라기보다는 소재부터가 비틀거립니다. 시나리오는 제아무리 니콜스라도 극복할 수 없게 나빴습니다.
9. 랜덤 하트 - 시드니 폴락
시드니 폴락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우디 알렌 등과 함께 할리우드를 건재하게 지키고 있는 노장 감독이죠. 하지만 해리스 포드와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라는 스타 파워로도 이 지루한 영화 ‘랜덤 하트’는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두 주인공 사이의 케미가 없었기 때문이고, 그랬던 이유는 스토리 자체가 터무니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8. 헐크 - 이안
그래요, 너무너무 못 만든 영화는 아니라고 칩시다. 하지만 이안은 너무너무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입니다. 헐크가 누구입니까? 화가 나면 때려부순다, 그게 헐크입니다. 과도한 철학과 드라마를 담으려고 하면 헐크가 화를 냅니다. 이안은 지나치게 진지해서 지루해져버리고 말았고, 이 영화는 역사상 가장 웃음 요소가 없는 슈퍼히어로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7. 에일리언 3 - 데이빗 핀처
'소셜 네트워크'가 찬사를 받은 건 정당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에일리언 3'가 제대로 조롱을 받지 않은 건 별로 정당한 일 같지 않습니다. 너무 어둡고 철학적이고, 웃음기와 재미가 쏙 빠져버린 '에일리언 3'는 젊은 데이빗 핀처의 치기였을까요? '에일리언'에서 서스펜스가 빠지면 그게 무슨 '에일리언'인가요?
근데 이게 꼭 데이빗 핀처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데이빗 핀처의 첫 거대 예산 영화였고, 뒤늦게 부랴부랴 감독으로 불려와 완성도 안 된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영화사는 심지어 핀처의 인풋이나 동의도 받지 않고 영화를 다시 편집했습니다. 운이 없었던 블록버스터 입문이었죠.
6. 어느 멋진 순간 - 리들리 스콧
'블레이드 러너'와 '글래디에이터'의 감독이 감상에 쩐 로맨틱 코미디를? 프랑스 시골의 풍경을 엽서 사진처럼 롱샷으로 찍는 게 어떻게 리들리 스콧이란 말입니까! 영국 '가디언' 지의 한 비평가는 '어느 멋진 순간 (A Good Year)'은 위장병이 나게 하는 관광객 용 포르노, 유머 하나 없는 영화 나부랭이라고 혹평을 쏟아 부었습니다.
5. 허영의 불꽃-브라이언 드 팔마
브라이언 드 팔마는 알프레드 히치콕 오마주 감독으로 유명하고, 그래서 누구는 오리지널리티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기술적으로 흠 없는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입니다. 하지만 유명한 소설을 각색한 ‘허영의 불꽃’은 웬 말인가요. 원작 자체가 영화화하기 힘들다는 평이 있었고, 그래도 만들었던 영화는 꼭 그 예상대로 되었습니다. 어떻게 감을 잡고 분위기 파악을 해야 할지 모를 코미디 영화입니다.
4. 레이디 킬러 -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
코엔 형제는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 삶에 대한 전복적인 시선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초기작 '분노의 저격자'에서부터 쭉 그래왔죠. 블랙 코미디에 대해서라면 이 형제를 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레이디킬러'는 뭐란 말입니까. 마치 그들 내면의 세 살짜리에다 채널을 맞춘 꼴로, 똑똑한 감독도 바보 같은 짓을 할 수 있다고 증명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3. 딜레마 - 론 하워드
론 하워드는 '아폴로 13'과 '뷰티풀 마인드'처럼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에 강한 감독입니다. 그런 감독이 '딜레마'의 연출을 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7천만 달러나 들인 이 엉망진창 덩어리는 급이 낮은 코미디였습니다. 하워드가 각본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감정이 모든 프레임마다 다 담겨 있었습니다. "전기 차는 게이야" 같은 대사, 참으로 저열한 영화였죠.
2. 알렉산더 - 올리버 스톤
정말로 형편없는 영화를 만드는 데는 천재성이 필요하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알렉산더'는 올리버 스톤을 천재 명단의 아주 높은 곳에 올려놓을 영화입니다. '플래툰', 'JFK' 같은 민감한 문제를 다룬 영화로 성공을 거둔 정치 스릴러의 거장은 알렉산더 대왕을 그린 영화에서는 하나도 잘해낸 것이 없습니다.
콜린 파렐과 안젤리나 졸리의 캐스팅은 완전히 헛다리였고, 두 배우도 이 영화에 나온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각본은 엉망이고 영화의 속도는 지루할 정도로 느리고, 고증이 부정확한 것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콜린 파렐에 안젤리나 졸리, 안소니 홉킨스, 제라드 레토, 발 킬머를 데리고도 이렇게 못 만든 영화가 나오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1. 피라나 2 - 제임스 카메론
'타이타닉'은 제임스 카메론을 '세상의 왕'으로 만들어주었지만, 1981년의 '피라나 2'는 카메론을 '최악의 왕'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운 피라냐들의 이야기는 저질로라도 웃기기는 했어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엉성하기 그지없는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카메론은 연출을 거의 하지 않았고, 공동 감독을 맡았던 아소니티스에게 대부분의 책임이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신인 감독으로서 이름이 올라가 버렸으니 어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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