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의 세계로 누군가를 인도하기 위해서는 어떤 미드를 추천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전혀 지루할 틈이 없이 완벽한 몰입감을 선사할 수 있는 미드이면서도 장르를 대표하는 미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트콤에서부터 범죄 수사물, 스릴러, 메디컬, 법정물까지 각 장르를 대표하는 '미드 입문자를 위한 추천 미드 5'입니다.
1. 그레이 아나토미 - ABC
2000년대 중반 메디컬 드라마의 절대 아성 'ER'의 성벽에 조금씩 균열이 생겨가는 와중에 포스트 'ER' 시대의 적자라 할 수 있는 작품은 ABC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2004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의 인물 중 한 명에 속한 불세출의 흑인 여성 크리에이터 숀다 라임즈의 손에서 빚어진 '그레이 아나토미'는 이제 막 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한 풋내기 인턴들의 일과 사랑을 통해 'ER'이 탄생했던 정확히 10년 후에 새로운 메디컬 드라마의 지형도를 그려나가게 됩니다.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메디컬 드라마 본연의 속성에서 비껴나 캐릭터들의 로맨스로 무게 중심이 이동한 연애물로 전락했다느니, 주연배우들의 하차가 반복되며 몇 년마다 한 번씩 궁여지책의 물갈이로 드라마를 이어나간다느니 등의 비판 아래, 지금은 '아직도 하고 있었어, 그거?' 하는 드라마의 대명사로 주저앉긴 했지만, 그래도 초반 시즌의 그 압도적인 몰입감은 요즘 메디컬 미드에는 상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2007년도에는 TV 드라마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프라임 타임 에미상의 드라마 부문 남녀 조연상 후보에 '그레이스 아나토미'의 시리즈 캐스팅 멤버인 조지, 이지, 크리스티나가 모두 후보에 올라 이지 역의 캐서린 헤이글이 수상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조연들의 잔치, 서투르지만 최선을 다하는 인생, 서로의 어깨를 두들겨주고 손을 맞잡아주는 천연덕스러운 사랑. 역시 인생은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는 거야. '그레이 아나토미'가 제시하는 친근한 미덕이랍니다.
2. 보스턴 리갈 - ABC
법정 코미디 분야에서 불세출의 스타 작가인 데이빗 E. 켈리의 '보스턴 리갈'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다섯 시즌 101개의 에피소드를 ABC에서 방영한 작품으로, 법정 드라마의 탈을 쓴 코미디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진정한 변호사의 세계이구나 싶은 상황을, 예의 그 기지 넘치고 재기발랄한 각본에, 뒹굴다 자지러질 수밖에 없는 황당무계한 설득력으로 그려내는 스토리텔링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온갖 술수와 음모까지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들의 세계에서, '보스턴 리갈'에서 펼쳐지는 오직 창의력과 말솜씨로만 승부를 보는 정통 변호사들의 요지경을 보고 있자면, 정말 어찌나 깜찍하고 야무진지, 참 잘했어요, 하며 그놈의 입을 한 대 톡 쥐어박아 주고만 싶은 욕구가 일 정도로 재미진 미드입니다.
드라마 출연 이래 각종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휩쓸고 있는 제임스 스페이더가 연기하는 앨런 쇼어와 저 옛날 '스타트랙'의 커크 선장님 윌리엄 섀트너, 이 골수 민주당원과 골수 공화당원의 끝도 없는 '꼴통' 행각과 우정, 절대 놓치지 말고 관람하셔야 할 필견 미드로 추천합니다.
3. 브레이킹 배드 - AMC
크리스 카터를 대신해서 '엑스 파일' 네 번째 시즌 이후를 책임졌던 빈스 길리건이 만든 명품 어드벤처 스릴러 크라임 드라마로, 불치암에 걸린 고등학교 화학 선생님이 자신이 죽고 난 이후 아내와 아들의 생계를 보장해 주기 위해 최고의 마약 제조자가 된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지만, '워킹데드'의 AMC 이전, '매드맨'과 짝을 이뤄 케이블 사상 최대의 원투 펀치 작품성 드라마로 자리잡았던 명작입니다.
미국의 소설가 스티븐 킹은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최고의 TV 드라마로서 '트윈 픽스'에 비견할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라고 애정을 드러냈으며, 명배우 안소니 홉킨스는 뒤늦게 '브레이킹 배드'를 폭풍시청하고, 주연배우인 브라이언 크랜스톤에게 무려 손편지를 보내 할리우드 최고의 명연기라며 극찬을 한 바 있습니다.
주연 배우 브라이언 크랜스턴의 3년 연속으로 프라임 타임 에미상 드라마 부분 남우 주연상 수상과 아론 폴의 두 번의 남우 조연상을 포함해서 총 13차례 에미상에 노미네이트되어 일곱 차례 수상에 성공했을 정도로 작품성이 걸출한 미드이기도 합니다.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정도의 흡입력이랍니다.
4. '웨스트 윙'
정치 드라마의 모범 답안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1999년 가을에 첫 시리즈를 시작한 '웨스트 윙'에 에미상은 4년 연속 TV 드라마 작품상을 안겨주었는데,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고 무게를 잡는 것 같아 에미상의 시상 결과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늘 공감하기는 힘들어하는 편이지만, '웨스트 윙'의 4년 연속 수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의나 불만을 달 수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정치라는 대극점의 취향과 주관이 존재할 수 있겠다싶은 소재지만, 취향과 관점의 차이를 넘어서 일단 경험한 사람이라면 모두 박수를 보내고 감동을 받으며 서로의 벽을 허무는 그런 궁극의 작품이란 게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작품이 있다면 그게 바로 드라마 '웨스트 윙'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1995년 작 '대통령의 연인'에서 부드럽지만 힘 있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각본으로 그려낸 아론 소킨은 '웨스트 윙'의 크리에이터와 제작자로서 또 한번 멋지고 매력적인 대통령상을 만들어내었는데, '웨스트 윙'의 대통령 바틀렛은 겉으로는 부드럽고 친근해 보여서, 그런 모습만 보고 쉽게 여기는 사람들의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힘을 보여주어야 할 때는 힘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캐릭터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로 '웨스트 윙'을 뽑고, 바로 그런 바틀렛 대통령에 본인의 모습을 투영시켜 다분한 각오를 다짐하며 정국을 이끌었지 않나 싶은 추측도 가능해지네요.
테러와 전쟁, 마약, 폭력, 다른 정치기관과의 힘겨루기 등을 박진감 넘치면서도 탄탄하고 지적으로 그려낸 '웨스트 윙'은 TV 역사상 가장 잘 만들어진 드라마 중 하나라고 확신합니다. 적어도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시즌4까지 100여 편을 쉬지 않고 볼 수 있는 체력까지 요하는 드라마입니다!
5. 프렌즈 - NBC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중후반부터 케이블 채널 동아 TV에서 방영되며, 케이블 채널 전성시대, 제2의 미국 드라마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대표적인 시트콤입니다. 인터넷 다운로드로 미국 드라마를 거의 본방사수하듯 시청하는 미드족들을 양산했으며, 여러 미드 자막 동호회의 탄생을 이끌기도 했던 작품이죠.
사회, 문화적 영향력 면에서도 단순한 TV 드라마의 수위를 뛰어넘어, 제니퍼 애니스톤의 헤어스타일은 '레이첼 헤어스타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조이의 '하아유두잉' 캐치프레이즈는 미국 영어에서 여자에게 작업을 걸 때 쓰는 공식 표현이 되었을 정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센트럴 파크 근처 그들의 단골 커피숍에서 등장한 커다란 커피 머그, 레이지보이 리클라이너, 파터리 반 가구 등은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날개돋친 듯 팔려나기도 했다. 누가 뭐래도 미드 하면 역시 시트콤 '프렌즈'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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