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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이슈

맹인 가수 이용복 두 눈 시력을 잃었어도 긍정의 아이콘이 된 이유? 인생다큐 마이웨이 이용복 나이, 대표 히트곡 노래, 카페, 아내 김연희와의 결혼 등 사연 모음 6

남진, 나훈아 등과 함께 한 시절을 풍미하던 맹인 가수 이용복이 TV 조선의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네요. 간간히 공연이나 앨범 활동을 했지만 방송에는 실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워낙 활동을 안 하신 지 오래라 그런지 저도 사실 이름만 듣고서는 잘 알 수 없었는데요. 노래를 쭉 들어보니, 아 이런 노래들을 부르신 분이구나 하게 되더군요. 70년대의 대표적인 가수, 7080세대의 대표 중 한 명인 이용복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함께 살펴보실까요?  



 1  한국의 스티비 원더 이용복 누구?

어릴 적에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된 가수 이용복은 1957년 6월 27일에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 66세가 되었고, 18세에 데뷔했으니 데뷔 48년이 되었군요.


중견을 넘어 원로로 향하고 있는 1952년생 스타들이 또 누가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같은 시대에 활동한 가수 양희은, 폐결핵으로 유명을 달리했던 김정호가 눈에 띄네요. 배우 안성기, 이덕화, 명계남 등이 있구요. 개그맨 임하룡, 이용식 등이 있어요.


무엇보다도 외국 스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리암 니슨이 벌써 66세입니다. 허걱. 그밖에 스티븐 시걸, 홍금보, '토릐 라그나로크'의 그랜드마스터로 역시 명불허전임을 보여준 제트 골드블럼, 데이빗 핫셀호프, 미키 루크도 모두 60대 중반이라니 가는 세월이 허망하기는 하구나 싶네요.  



 2  어린 시절에 잃은 시력, 그리고 가수 데뷔

1952년에 태어난 세 살 때 마루에서 마당으로 떨어져 왼쪽눈을 실명했고, 일곱 살 때는 썰매를 타다 오른쪽 눈을 찔리는 바람에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기타를 잡은 이용복은 고등학생이던 1970년에 루치오 델라의 '4 De Marzo'라는 노래를 번안한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는 노래로 단숨에 스타가 됩니다.


처음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가수라는 화제성 때문에 스타가 됐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죠. 당시 마침 레이 찰스나 스티비 원더가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다, 청년들 사이에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 워낙 강하던 1970년대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세대는 잘 알지 못할 그의 많은 히트곡을 들어보면 단순히 그런 '현상'에 기댄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됩니다.   


 

 3  1970년대 남자 김정미?

한때 1970년대 신중현 사단에서 노래하던 여자가수 김정미에 푹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1970년대에 사이키델릭하면서도 대중적이고도 환상적인 곡과 보컬에 매료되었다고나 할까요?


이용복도 처음에는 남진, 나훈아 등과 197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라는 설명에 아, 그렇구나 하고 노래를 쭉 들어보았는데, 김정미의 남자 카운터파트가 이용복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음악이었답니다.


워낙 번안곡을 많이 내기도 했지만 1950년대 미국의 로커빌리와 롤링 스톤즈의 느낌을 풍기면서도 뽕끼와 대중성과 포크적인 정서까지 겸비하고 있어서 어린 나이에 맹인이라는 화제성을 뛰어넘는 음악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결국은 1972년과 1973년에 MBC 10대 가수상에 선정되었죠.



 4  이용복의 노래들, 대표곡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용복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는 곡으로 데뷔했는데요. 이용복이 인기를 얻자, 남진, 윤정희, 윤일봉의 주연으로 이용복의 삶을 그린 동명의 영화가 1972년에 만들어지기도 했답니다.


그후로도 1970년대에 10년 가까이 주옥 같은 히트곡들을 탄생시킵니다. '그 얼굴에 햇살을', '줄리아, '달맞이꽃' '잊으라면 잊겠어요' '사랑의 모닥불' '마지막 편지' '안개 속의 여인아' '마음은 짚시'가 줄줄이 대박을 쳤죠. 이용복 노래로 검색을 하시면 얼마든지 나오고 유튜브를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용복 히트곡 모음>


어쨌거나 이용복의 노래를 듣고 한국의 1970년대는 악기 실력에 멋지고 독특한 음색의 가수들이 많았고, 서양 것을 흉내를 내도 제대로 내는 뮤지션들의 보고였음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1980년대가 밝아왔습니다. 컬러 TV의 시대가 열렸고, 새로운 군부시대가 열렸습니다. 이용복의 활동이 다소 느닷없이 뜸해진 것이 군부의 입김 때문이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본인은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 그보다는 컬러 TV의 등장으로 PD들이 전보다 기피한다는 인상은 받았답니다. 그렇게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는 것 같았지만, 이용복의 음악적 열정은 그후로도 식지 않았답니다.



 5  식지 않은 음악 열정과 양평, 만리포 카페

이용복은 활동이 뜸해지던 시기에 매니지먼트와 갈등도 겪었고 본인 스스로 음악에 시들해지던 시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무대보다는 무대 뒤, 녹음 스튜디오에서 다른 방식으로 음악 활동을 펼치는 일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용복의 성격에 관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1972년 10대가수상 쇼를 했던 시민회관에서 불이 났다고 합니다. 이때 자신이 화재의 최초의 목격자란 익살 가득한 농담을 던졌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장애에 부끄러워하는 성격도 아니고, 가수생활이 지지부진해졌다고 실의에만 빠져 있지도 않았고, 다른 방식으로 음악 활동을 풀어나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1984년에 스튜디오를 차려 2001년 정도까지 운영했고, 이광조, 김수철, 벗님들, 부활 등이 이용복의 스튜디오에서 앨범 녹음을 했다고 하네요.


그후에도 양평에 카페를 차려 스스로도 공연하면서 기타도, 노래도 놓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현재는 만리포에서 자신이 히트곡 제목을 딴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라는 카페와 '만리포니아'라는 펜션을 운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6  아내 김연희와의 만남과 러브스토리 

'인간다큐: 마이웨이'에서는 바로 이 만리포 카페를 배경으로 이용복 씨의 인생사와 뮤지션으로서의 역사가 그려질 텐데요. 이용복의 노래인 '첫사랑'의 주인공 김연희 씨가 함께 합니다. 노래 제목이 '첫사랑'이니 김연희 씨가 첫사랑이라는 말일 테죠?


김연희 씨 집안의 극심한 반대로 식조차 올리지 못하고 산 두 사람이지만, 30년 넘게 살면서 김연희 씨가 작사까지 참여한 음반까지 내면서 느긋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용복과 김연희 부부 보면서 어느새 너무도 많이 소비된 7080 감성과는 다른 새로운 감성을 완전충전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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