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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할리우드 영화 특집

스타워즈 레아 공주 배우의 숨겨진 놀라운 능력

전 세계에서 영화 산업이 가장 세분화되어 있는 할리우드에는 '스크립트 닥터 (Script doctor)'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굳이 옮기면 '대본 개작 전문가' 정도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스크립트 닥터가 하는 일은 무엇이며, 할리우드에는 어떤 유명한 스크립트 닥터들이 있고, 그들이 작업한 영화들은 어떤 작품이 있었는지 등등을, 다섯 명의 할리우드 유명 스크립트 닥터들을 소개하면서 알려드릴게요. '죽은 대본도 살린다는 금손! 할리우드 유명 스크립트 닥터들', 함께 보실게요.



 1  조스 웨던

영화는 다른 그 어떤 엔터테인먼트 산업보다도 협업이 중요시되는 장르입니다. 한 편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순간까지 배우들에서부터 제작진, 테크니션 등등이 하나로 어우러져야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데요. 


그 중 각본을 맡은 작가가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거나, 또는 시나리오 작가의 능력 이상의 것이 필요한 순간이 되면, 제작사는 소위 '스크립트 닥터'를 고용하게 되고, 그렇게 고용된 전문 스크립트 닥터들은 대사를 수정하거나, 유머나 결정적인 대사를 삽입, 혹은 스토리 구조를 바꾸거나, 심지어는 캐릭터의 성격을 재창출하는 등 각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모든 분야의 수술을 집도하게 됩니다. 


흔히 고치는 것보다 아예 그냥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것이 더 쉽겠다는 얘기가 있듯, 이런 스크립트 닥터들의 경우, 기존 시나리오 작가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작가적 능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고, 그래서 할리우드의 내노라 하는 유명 시나리오 작가들이나 감독들이 스크립트 닥터 일을 병행했던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감독 조스 웨던도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1990년대 후반 인기 미드 '버피와 뱀파이어'에서부터 '파이어플라이', '캐빈 인 더 우즈', 그리고 두 편의 마블 '어벤져스' 시리즈까지 최고의 감독으로 명성을 날리는 조스 웨던은 과거 '스피드', '퀵 앤 데드', '트위스터', '엑스맨' 등등의 작품의 스크립트 닥터로 활약했습니다. 기존 각본을 빠르게 고쳐 쓴다는 의미에서, 본인 표현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속기사'라고도 하지만, 조스 웨던은 스크립트 닥터 일을 꽤나 즐긴 것으로도 유명하답니다. 


특히 1994년 쟝 드봉 감독의 '스피드'에서는 촬영 일주일 전에 소환된 조스 웨던은 그레이엄 요스트의 기존 각본의 거의 모든 대사를 새로 썼을 정도였지만, 하지만 영화가 개봉한 후에 각본가로 크레디트에 오른 인물은 그레이엄 요스트 한 명이었죠. 이유는 아래에서 따로 설명해 드릴게요.



 2  아론 소킨

아론 소킨은 '소셜 네트워크'와 '머니볼', '몰리스 게임'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에 세 차례 후보에 올라 '소셜 네트워크'로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최고의 각본가 중의 한 명입니다. 


아론 소킨 역시 지난 1996년 제리 브룩하이머 감독의 '더 록'과 1998년 토니 스콧 감독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와 같은 작품에서 스크립트 닥터로 활동했던 적이 있습니다. 마치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을 쓰다 쉬어가고 싶을 때 좋아하는 작품의 번역을 하는 것처럼, 아론 소킨 본인 표현대로라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가끔 팝콘 무비의 스크립트 닥터 일을 하는 것은 꽤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네요.


그런 아론 소킨의 스크립트 닥터로서의 능력이 최고조로 발휘됐던 작품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3년 작품 '쉰들러 리스트'였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어웨이크닝'으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던 스티븐 자일리안의 각본에 더욱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아론 소킨을 소환했고, 아론 소킨이 스크립트 닥터로서 활약했던 '쉰들러 리스트'는 아카데미 각본상을 포함해서, 작품상, 감독상 등 7개 부문 수상에 성공하는 스필버그 최고 영예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다만, 스크립트 닥터로 아론 소킨의 활약이 아주 컸다고는 해도, '쉰들러 리스트'의 아카데미 각본상은 스티븐 자일리안 단독 수상입니다. 아론 소킨은 영화의 크레디트에도 올라가지 못하는 비공식 각본가인 것이죠. 


그 이유는 미국 작가 조합의 크레디트 조항 때문입니다. 미국 작가 조합이 규정한 바에 따르면, 작가가 영화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는 창작의 경우 50%, 개작의 경우 35% 이상의 기여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요. 기본적으로 스크립트 닥터의 분량이 그 정도 비율을 넘기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그래서 제 아무리 유명한 스크립트 닥터라고 해도 상당한 금액의 돈은 챙길 수 있지만, 영화 크레디트에 오르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작가 뒤의 숨은 작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3  쿠엔틴 타란티노

1990년대 '저수지의 개들'과 '펄프 픽션'이라는 원투 펀치로 할리우드를 강타한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인물의 등장은 정말 신선했습니다. 특히나 과거의 고루해보일 수도 있는 영화적 소재를, 쉽고 재밌게 현재의 언어로 표현해내는 타란티노만의 독특한 영화적 감각은 정말 탁월했습니다. 


당연히 그런 타란티노의 능력을 할리우드가 그냥 놔둘리가 없었죠. 타란티노만의 끓어 넘치는 팝컬쳐 기반의 대사빨에 반한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은 '크림슨 타이드', '더 록' 등의 작품에서 타란티노를 스크립트 닥터로 기용해서 활용을 하기도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그거 아시나요? '펄프 픽션'과 '장고: 분노의 추적자'로 두 차례나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쿠엔틴 타란티노에게는 스크립트 닥터로서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1994년 영화 '남자 그리고 여자'입니다. 타란티노가 스크립트 닥터로 소환됐지만, 로튼토마토 지수 0%의 참혹한 결과로 귀결된 타란티노 최고의 흑역사랍니다.



 4  사이먼 킨버그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서부터 '엑스맨: 최후의 전쟁', '셜록 홈즈' 등의 각본을 썼으며, 특히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와 '엑스맨: 아포칼립스'로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800만 달러(한화 약 90억 원)의 각본료를 받는 사이먼 킨버그 역시 스크립트 닥터 출신입니다. 


2000년대 초반 할리우드에 처음 발을 디딘 사이먼 킨버그가 할리우드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시도했던 방도가 바로 스크립트 닥터였습니다. '미녀 삼총사 2-맥시멈 스피드'로 시작, '캣우먼', '엘렉트라' 등의 작품에서 스크립트 닥터 능력을 인정받아 자연스럽게 할리우드 최고 수준의 시나리오 작가로 출세 가도에 오르게 된 사이먼 킨버그였는데요. 


사이먼 킨버그는 시나리오 작가로서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와 같은 작품에서 스크립트 닥터로 일하며 일 주일에 40만 달러(한화 약 4억 5,000만 원) 가량의 수당을 챙겼으며, '엑스맨: 다크 피닉스'로 감독 데뷔를 앞둔 현재도 스크립트 닥터 일은 시간이 허락하는한 흔쾌히 오케이를 할 정도로 스크립트 닥터 일을 꽤 즐겁게 즐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답니다. 



 5  캐리 피셔

지난 2016년 12월 27일 수술 후유증에 따른 심장 마비로 세상을 뜬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 역의 배우 故 캐리 피셔는 어쩌면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스크립트 닥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캐리 피셔는 1977년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 역으로 출연하며 유명세를 얻었지만, 그러나 레아 공주 역이 워낙 강렬하게 이미지가 고착되어 그 후로는 별 다른 주연 배역을 맡지 못했고, 1983년 사이먼 앤 가펑클의 가수 폴 사이먼과 결혼했다 2년 만에 이혼을 하고, 그 와중에 코카인 중독으로 재활원을 들낙거려야 했던 안타까운 사연의 배우이기도 했는데요. 


캐리 피셔가 1991년 배우 브라이언 러드와 두 번째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과거 약물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등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이후 찾은 제2의 직업이 바로 작가입니다. 캐리 피셔는 회고록 '프린세스 다이어리스트'를 포함해서 '변두리에서 온 엽서'와 같은 베스트셀러 소설을 써낸 작가로, 캐리 피셔의 소설은 국내에서 메릴 스트립, 셜리 맥클레인 주연의 '할리웃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영화 개봉을 하기도 했습니다. 


▲ 작가 캐피 피셔의 책들


캐리 피셔가 작가로서 활동하던 1990년대 당시 작가 캐리 피셔를 알린 또 하나의 커리어가 바로 '스크립트 닥터'였습니다. 


이미 과거 오리지널 '스타워즈' 시리즈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비공식적으로 스크립트 닥터로 조지 루카스 감독을 만족시켰던 캐리 피셔는, 1990년대 들어서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1, 2, 3' 프리퀄 3부작을 포함해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후크', 우피 골드버그 주연의 '시스터 액트'에서부터 '아웃 브레이크', '라스트 액션 히어로', '리썰 웨폰 3', '웨딩 싱어', '리버 와일드', '그래서 난 도끼 부인과 결혼했다', '밀크 머니', '마이 걸 2', '러브 어페어' 등등의 작품에서 스크립트 닥터로 맹활약을 하게 됩니다. 



이 당시 캐리 피셔의 스크립트 닥터로서의 유명세는 말 그대로 할리우드 히트 영화의 서너 작품 중 한 편은 캐피 피셔의 손을 거쳐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인기였고, 1995년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아웃브레이크'의 스크립트 닥터로 캐피 피셔가 받은 금액이 일 주일에 10만 달러(한화 약 1억 1,300만 원)였으니 캐리 피셔가 얼마나 잘 나가는 할리우드 스크립트 닥터였는지 상상이 되실 것입니다.


▲ 스크립트 닥터로 활약하던 당시 캐리 피셔


2000년대 들어서도 캐리 피셔는 '스크림 3'를 포함해서 '코요테 어글리', '케이트 앤 레오폴드' 등의 작품에서 스크립트 닥터로서 활약을 했지만, 그러나 나이와 지병으로 이후 점차 스크립트 닥터 일을 줄여나가게 되었고, 최근 들어서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로그원: 스타워즈 스토리' 등의 작품 출연 이후 지난 2016년 12월 23일 런던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비행기 기내에서 착륙 15분 전 심장마비를 겪었다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나흘 후 60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 만큼이나 스크립트 닥터라는 커리어적인 면에서도 큰 유명세를 얻었던 배우, 할리우드 유명 감독들에게는 영화 시나리오의 구세주와 같았던 최고 실력의 스크립트 닥터, 바로 배우 故 캐리 피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