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할리우드 영화 특집

모두가 당혹스러웠던 뜻밖의 영화 촬영 중단 사례들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화 촬영이 중단되는 이유는 자연 재해나 촬영 사고, 혹은 주조연 배우들 사이의 갈등 혹은 배우와 제작진간의 갈등 때문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 말고, 어찌 보면 다소 황당하면서도 어이없게 뜻밖으로 배우나 제작진 모두가 당혹스러웠던 촬영 중단 사례들도 여럿이 있었는데요. 역시 세상은 넓고 할리우드의 인간들은 다종다양함을 증명했던 촬영 중단 사례들 몇 가지를 뽑아봤습니다. '모두가 당혹스러웠던 할리우드 영화사의 뜻밖의 촬영 중단 사례들', 함께 보실게요.



 1  제리 오코넬 - 스탠 바이 미 (1986)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중의 하나인 스티븐 킹이 1982년에 출간한 중편 모음집 '사계'는 공포 소설 작가의 대명사 스티븐 킹이 세간의 편견처럼 늘 '공포'만을 쓰는 작가가 아님을 증명한 걸출한 소설집으로, 겨울 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 편이 각각 '쇼생크 탈출', '스탠 바이 미',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로 영화화되어 인기를 얻습니다. 


그 중 로브 라이너 감독이 연출을 맡은 '스탠 바이 미'는 리버 피닉스와 키퍼 서덜랜드, 윌 휘튼, 제리 오코넬의 동네 꼬마 시절 모습으로 기억되는 상큼한 영화였는데요. 이 작품에서 번 테시오 역을 맡았던 13살 소년 제리 오코넬은 정말로 뜻하지 않게 촬영을 이틀 동안이나 중단시켰던 과거가 있었답니다. 


스틸 사진만 딱 봐도 네 명의 소년들 중에서도 가장 먹성이 좋아 보였던 제리 오코넬은, 미국 오레곤 주 유진에서 촬영이 한창 진행되던 중에 인근 마을 장터로 몰래 빠져 나가 브라우니를 잔뜩 사 먹었는데, 근데 마을 장터는 히피들의 축제였고, 제리 오코넬이 사먹었던 브라우니는 히피들이 오손도손 제조해 즐겼던 대마초가 함유된 브라우니였다는게 문제였네요. 



촬영장에서 제리 오코넬이 없어진 것을 알고 배우들과 제작진들은 수소문을 하러 나갔고, 결국 제작진은 인근 공원에서 완전히 맛이 가서 방향감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어 길을 잃은 채 울고 있는 제리 오코넬을 발견했고, 촬영은 이틀 동안 중단이 됐다고 합니다.


그런 악몽같은 난처한 사건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제리 오코넬은 '스탠 바이 미'를 찍었던 당시를 자신의 인생 최고의 경험이자 평생 최고의 여름이었다고 말합니다. 친구들과 숲속을 돌아 다니며 경험했던 모든 것이 다 좋았고, 특히 그 사건 당시 로브 라이너 감독이 자신과 아이들을 대했던 따뜻함이 정말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면서요. 



 2  칼 웨더스 - 록키 4 (1985)

진지한 드라마 배우가 되고 싶었으나 도저히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실버스타 스탤론은 할리우드에서 쓸 만한 배역을 맡을 유일한 길은 스스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엄청나게 고쳐져기는 했지만 스탤론은 배역을 따내는 데 성공하고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액션 스타의 한 명, 그리고 가장 사랑받은 액션 프랜차이즈의 하나가 탄생합니다. 바로 '록키' 시리즈입니다.


'록키' 시리즈는 스포츠 영화치고는 상당히 어둡고 심리 드라마적인 경향이 강했던 1편이 100만 달러 (한화 약 11억 원)의 제작비로 무려 북미에서만 1억 1,723만 달러 (한화 약 1,300억 원)의 수익을 올리는 대박을 치게 되었고, 2편의 8,518만 달러(한화 약 964억 원), 3편의 1억 2,504만 달러(한화 약 1,415억 원)의 흥행을 거쳐, 1985년 개봉한 '록키 4'는 무려 전 세계 흥행수익 3억 달러(한화 약 3,396억 원)을 넘기는 시리즈 최고 흥행작이 됩니다. 



'록키 4'의 이런 유례없는 대박 흥행의 이유는 1980년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 프로파간다 요소를 논란 속에서도 주요적절하게 배치한 전략적 스토리가 주요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소련이 정책적으로 키운 강철이나 다름없는 복서 이반 드라고와의 경기 도중 사망한 친구 아폴로 크리드의 복수를 록키가 보여준다는 전형적인 미국식 우월주의 스토리인데요. 바로 이 과정을 촬영하면서 아폴로 크리드 역의 배우 칼 웨더스는 나흘 간의 촬영 중단을 야기했던 과거가 있었답니다. 


▲ '록키 4', 이반 드라고와의 경기 도중 사망한 아폴로 크리드


칼 웨더스는 돌프 룬드그렌과의 시합 중 사망하는 험난한 장면을 찍을 때, 배우로서는 신인이나 다름없었던 돌프 룬드그렌이 그 어마무시한 강철 피지컬로 강약 조절도 없이 몸을 날리는 메소드 연기로 임하는데, 몇 대 맞다 보니까 이러다가 극중 스토리상이 아니라 진짜로 촬영 중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촬영장을 이탈했고, 그 때문에 '록키 4'의 가장 중요했던 장면 중 하나가 나흘 동안이나 촬영이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감독 겸 주연 배우였던 실버스타 스탤론이 어찌어찌 칼 웨더스를 설득해서 해당 장면의 촬영을 완료하기는 했지만, 하지만 칼 웨더스의 공포는 결국 현실이 되었습니다. 


록키와 이반 드라고와의 소련에서의 마지막 대결 장면을 찍으면서 돌프 룬드그렌의 강펀치가 실버스타 스탤론의 가슴을 강타했고, 결국 실버스타 스탤론은 가슴 타박상과 혈압 이상으로 헬리콥터를 이용해서 인근 LA 병원으로 후송돼서 8일 동안이나 응급실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무시무시한 돌프 룬드그렌이었네요. 


▲ 신인 배우 돌프 룬드그렌의 메소드 연기 때문에 두 차례나 촬영이 중단되었던 '록키 4'



 3  마이크 마이어스 - 웨인즈 월드 (1992)

1992년 페네로피 스피리어스 감독의 명작 코미디 영화 '웨인즈 월드'의 최고 명장면은 바로 웨인과 가스 일행이 시카고 도심을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에 맞춰 헤드뱅잉을 하면서 차를 몰고 가던 도입부 장면입니다. 정말 강렬하면서도 인상적이었던 도입부였죠. 


하지만 아뿔싸, 제작사인 파라마운트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사용권료가 너무 비싸다운 이유를 들어 이 곡 말고 좀 저렴한 건스 앤 로지스의 노래를 쓰면 안되겠느냐는 황당한 주문을 했고, 이에 주연 배우이자 각본을 맡았던 마이크 마이어스는 거의 일 주일 이상을 촬영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로 제작사와 신경전을 벌였다고 합니다. 


▲ '웨인즈 월드' 보헤미안 랩소디 도입부 장면


마이크 마이어스에게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화 그 자체였습니다. 마이크 마이어스가 '웨인즈 월드'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된 시작이 바로 친구와 함께 라디오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듣다가 '갈릴레오' 부분을 누가 불렀는지를 전부 구분하는게 진짜 퀸 매니아라는 식의 썰전을 벌이던 과정에서였고, 바로 그런 음악적 열정을 스크린에 개그로 녹여내게 된 작품이 '웨인즈 월드'였기 때문입니다. 


근데, 저작권 사용료가 비싸다는 이유로 영화의 생명이자 근간인 노래를 그냥 저렴한 다른 노래로 바꾸자고요. 마이크 마이어스가 길길이 날뛰며 영화를 때려치울 기세로 촬영 중단을 강행한게 이해 못 할 이유는 전혀 없지요. 이건 뭐 거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로다주의 몸값이 비싸니까 아이언맨 대신 주인공을 헐크로 바꾸라고 했다는 마블 스튜디오 사장 아이작 펄머터의 발언만큼이나 당혹스러운 무개념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ㅠㅠ



 4  애쉬튼 커쳐 - 잡스 (2013)

'요절복통 70 쇼'와 '두 남자와 1/2'과 같은 시트콤 스타에서 '라스베가스에서만 생길 수 있는 일', '친구와 연인사이' 등의 로맨틱 코미디 무비 스타를 거친 애쉬튼 커쳐가 2013년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를 그린 '잡스'를 그토록 원했던 것은 당연했습니다. 


실제로 애쉬튼 커쳐는 우버, 에어비앤비, 스카이프 등 실리콘밸리 IT 벤처기업 100여 곳에 투자를 해서 막대한 성공을 거둔 이른바 '테크-셀레스터 (Tech-Celestor)', 다시 말해 실리콘밸리 신생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를 하는 유명인으로 명성이 높을 뿐더러, 본격 정극 배우로서의 도전으로 자신이 최고로 존경하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진짜 배우로서도 인생을 건 야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애쉬튼 커쳐는 정말 열심히 배역을 준비합니다. 머리와 수염을 기르는 것은 기본이었고, 스티브 잡스가 출연했던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인터뷰를 보며 잡스에 대한 이해를 높였고, 스티브 잡스의 손동작이나 손가락의 사소한 움직임에서부터 잡스의 말투에서 풍기는 뉘앙스와 액센트까지 그대로 잡아내서 스티브 잡스 싱크로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완벽 스티브 잡스 변신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애쉬튼 커쳐


아울러 애쉬튼 커쳐는 한 때 과일만 먹던 프루테리언이었던 스티브 잡스를 이해하기 위해 스티브 잡스의 식이요법 그대로 과일과 견과류를 먹는 메소드 연기에까지 몰두를 하게 되었는데, 결국 이 메소드 식이요법이 문제가 돼서, 애쉬튼 커쳐는 촬영이 시작되기 직전 급성 장염으로 병원에 실려가며 영화 제작에 지장을 초래하게 됩니다. 


애쉬튼 커쳐의 관련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스티브 잡스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 하느라 췌장이 완전히 떨어지는 것 같은 엄청난 고통에 고생을 했다고 하는데요. 아쉽게도 그런 애쉬튼 커쳐의 몸과 마음을 바친 노력에도 영화는 1,200만 달러의 제작비로 겨우 3,500만 달러(한화 약 396억 원)의 전 세계 흥행만을 기록하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너무 열심히 몰두해서 민폐를 끼쳤던 애쉬튼 커처였네요.



 5  벤 애플렉 - 나를 찾아줘 (2014)

벤 애플렉은 태어나기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에서 태어났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산 이른바 보스턴 토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벤 애플렉이 국내외에서 유명해진 일은 단연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던 보스턴 동네 불알친구 맷 데이먼과 함께 공동 각본을 쓰고 조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굿 윌 헌팅'일 텐데요. 벤 애플렉은 이 작품으로 맷 데이먼과 함께 1997년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며 할리우드의 총아로 떠오르게 되며 단번에 유명세를 얻게 됩니다. 


▲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 1997년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수상!


자, 여기서 기억해야 할 사항은 아카데미 각본상도, 맷 데이먼도 아닌 벤 애플렉이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토박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보스턴 토박이 벤 애플렉과 천생연분 배필이었던 제니퍼 가너가 공개 연인을 인정한 장소가 바로 보스턴의 트레이드 마크인 보스턴 레드삭스 홈구장 펜웨이 파크였으니까요. 


맷 데이먼과 더불어 뼛속까지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이었던 벤 애플렉이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역사상 가장 극적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는 2004년 레드삭스 월드시리즈 우승의 현장인 펜웨이 파크에서 만삭의 몸이었던 제니퍼 가너와 공개 연인을 인정한 것은 벤 애플렉으로서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야구팀의 홈구장에서 가장 사랑하는 연인과의 사랑을 인정했던 상징적인 일이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이혼은 너무 안타까워요)


▲ 2004년 펜웨이 파크에서 공개 열애 인정한 벤 애플렉과 제니퍼 가너 


심지어 벤 애플렉이 어느 정도 레드삭스 팬이냐면요. 지난 2014년 영화 '나를 찾아줘'를 촬영할 때 데이빗 핀처와 격돌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바로 영화 스토리상 반드시 필요한 뉴욕 양키즈 야구 모자를 쓰는 것을 벤 애플렉이 죽어도 그것만은 못하겠다며 거부한 것 때문이죠.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즈는 한일전 축구 이상 앙숙의 라이벌이거든요!)



'나를 찾아줘' 극중 내용상 실종된 아내 에이미와 벤 애플렉이 분한 닉 던 모두 뉴욕 맨해튼 출신이라, 모자를 쓰면 당연히 뉴욕 양키즈 모자였지만, 그러나 벤 애플렉은 보스턴 레드삭스 팬으로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뉴욕 양키즈 모자만은 쓸 수 없다고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렇게 나흘간 촬영을 중단할 만큼 갈등이 지속된 끝에 그냥 뉴욕 메츠 모자를 쓰기로 합의를 이룬 후 촬영을 재개했다고 합니다. 2014년 당시 데이빗 핀처와 벤 애플렉 결국 누가 이기냐 하며 할리우드가 신나서 예의 주시했던 촬영 중단 사태였죠.  


▲ '나를 찾아줘'에서 벤 애플렉이 뉴욕 메츠 모자를 쓴 이유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