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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할리우드 영화 특집

정체를 숨겨라! 고도의 출연 전략으로 관객을 소름 돋게 했던 스타들

스타 배우들을 캐스팅한 영화라면 당연히 스타의 이름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서 흥행 대박을 꾀하는게 정상적입니다. 하지만 몇몇 영화의 경우에는 일부러 스타급 배우들의 정체를 꼭꼭 숨기는 전술을 통해 깜놀 효과를 극대화시킨 경우도 있습니다. 


스타급 배우의 역할이 영화의 스토리상 홍보 과정에서 공개가 되면 반전 효과가 상실되기 때문인 경우가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스타 배우의 정체를 감춰야만 되려 흥행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일텐데요. 이런 고도의 출연 전략으로 관객을 소름 돋게 했던 영화 속 스타들은 누가 있었는지 사례들을 모듬해봤습니다. 함께 보실게요. (해당 영화의 스포일러가 담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안해 주시고 읽어주세요.)



 1  맷 데이먼 - 인터스텔라 (2014)

2014년 1월 국내 개봉 후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깜짝 흥행작 '인터스텔라'는 흥행 만큼이나 만 박사 역을 맡은 배우 맷 데이먼의 극중 역할과 등장 방법으로 관객들을 깜짝 놀래켰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인터스텔라'는 포스터 상에서도 매튜 맥커너히와 앤 해서웨이, 제시카 차스테인, 마이클 케인의 이름만 부각시켰고, '인셉션', '다크나이트' 시리즈 감독 작품이라는 홍보 문구가 적극적으로 등장하는 와중에도 맷 데이먼의 이름은 빠져 있었으며, 영화 초반 마이클 케인이 나사로 계획의 선발대를 소개하는 장면에서도 만 박사의 사진은 원거리 샷으로 꼭꼭 숨어 있습니다. 


▲ 포스터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맷 데이먼의 이름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죠. 맷 데이먼이 맡았던 만 박사는 지구 최고의 물리학자로서 인류 거주에 적합한 행성을 찾아 나선 나사로 계획의 리더였고, 후발대 쿠퍼 일행이 에드먼즈 행성 대신 만 박사가 발견한 행성으로 향했던 것도 만 박사가 보낸 신호 때문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만 박사의 음모였거든요.


자신이 착륙했던 행성이 사람은 살 수 없는 행성이었지만, 거짓 보고를 통해 자신을 구해줄 탐사대를 부르기 위한 음모를 꾀한 악역을 맡았던 맷 데이먼의 출연은 '인터스텔라'의 가장 중요한 스토리적인 반전이었고, 그 때문에 1년 여의 제작 기간 동안 파라마운트는 맷 데이먼의 출연 사실과 배역을 꼭꼭 숨겼고, 그 결과 많은 관객들이 반전 효과에 탄성을 질렀다는 후문이었죠.



 2  케빈 스페이시 - 세븐 (1995)

데이빗 핀처 감독의 1995년도 영화 '세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네스 팰트로야 당시에는 스타급 배우가 아니었기에 그렇다쳐도, 케빈 스페이시는 북미 기준으로 직전 해에 개봉해 화제몰이에 성공했던 '유주얼 서스펙트'로 이름값을 충분히 할만한 배우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세븐'은 브래드 피트와 모건 프리먼 두 형사의 이름만 강조되고 케빈 스페이시는 캐릭터 이름까지 신원 불명의 남자라는 뜻의 '존 도'로 설정되는 등, 이름부터 모습까지 철저히 베일에 감춰집니다. 


이건 케빈 스페이시의 판단에 따른 전략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케빈 스페이시는 '세븐'에서 브래드 피트급으로 홍보에 활용될 예정이었지만, 케빈 스페이시가 미스터리 살인범의 정체가 드러나면 플롯이 망가진다며 제동을 걸었고, 포스터나 홍보 전단, 심지어는 오프닝 크레디트에서까지 케빈 스페이시의 이름은 꼭꼭 숨겨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효과는 대박이었습니다. 케빈 스페이시가 그린 존 도는 정말로 무서웠습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이나, 성경의 일곱 가지 대죄에 집착하며 동료 인간들을 혐오하는 광적인 연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죠. 마케팅, 홍보 불참으로 출연료가 깎이면서까지 캐릭터의 페르소나에 몰입했던 케빈 스페이시의 고도의 전략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심지어는 개봉 이후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DVD나 블루레이 등에서도 케빈 스페이시의 이름은 여전히 부재중일 정도니 말 다했네요.


▲ 포스터, 블루레이 등 어디에도 없었던 케빈 스페이시



 3  톰 크루즈 - 트로픽 썬더 (2008)

2009년 제6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남우조연상 부문에는 '다크 나이트'의 히스 레저,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의 랄프 파인즈, '다우트'의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과 같은 진지한 배역을 맡았던 배우들과 함께 병맛 코미디 영화 '트로픽 썬더'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톰 크루즈의 이름이 함께 올라가 있었습니다. 


아울러 당해년도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트로픽 썬더'로 남우 조연상 후보에 오르게 되는데, 코미디 영화, 그것도 블랙 코미디가 아닌 병맛 코미디 영화로 골든글로브나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기가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라는 점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톰 크루즈의 연기는 관객과 평단 모두를 경악시킨 최고의 열연이었음이 분명했다는 증거입니다. 


▲ 믿기지 않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흑인 분장


그 중에서도 톰 크루즈의 연기는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트로픽 썬더'에서 흑인으로 분장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야 당시 '아이언맨' 효과가 막 시작되던 시기여서 특급 스타는 아니었지만, 톰 크루즈는 '탑건'에서부터 '레인 맨',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제리 맥과이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등으로 이미 할리우드 최고 수준의 배우였는데, 그런 톰 크루즈가 대머리 파격 분장에 저질 댄스까지 춰가며 심하게 망가졌으니, 이런 호재를 제작진이 그냥 날릴리가 없었죠. 


▲ 더욱 믿기지 않는 톰 크루즈의 망가짐


감독과 주연을 맡은 벤 스틸러는 포스터는 물론이고 홍보 전단, 마케팅 등에서 뚱보 대머리 제작자 레스 그로스맨 역을 맡은 조연 배우 톰 크루즈의 이름을 철저하게 감췄고, 촬영장에서 톰 크루즈가 분장한 모습을 찍어서 올린 사람을 고소까지 해가면서 최고의 반전을 기획했습니다. 


그리고 그 반전은 기가 막히게 먹혀들어가게 됩니다. 심지어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올 때까지 저 대머리 제작자 배우가 누구인지 몰랐다가 나중에 심하게 뿜었다는 관객까지 있었을 정도니 아주 제대로 성공한 출연 전략이었네요.


▲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톰 크루즈의 이름



 4  사무엘 L. 잭슨 - 아이언맨 (2008)

열일하는 할리우드의 노예(?) 배우 사무엘 L. 잭슨은 그간 여러 차례 카메오 출연을 했습니다. '펄프 픽션'에서의 인연으로 '킬 빌 - 2부'에서 결혼식 피아노 연주자 역으로 출연했던 것을 시작으로, '아이언맨', '토르: 천둥의 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등등이죠. 


그 중 가장 의미심장하고 전략 전술적이었던 카메오 출연은 단연코 2008년 '아이언맨'에서의 쿠키영상에 등장했던 모습이었습니다. 오리지널 원작 코믹스에서 백인이었던 쉴드의 국장 닉 퓨리가 빅 스크린에서 흑인으로 깜작 설정되었다는 점 이외에도, "세상에 슈퍼히어로가 당신 뿐인거 같나?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어벤져스라는 특별한 단체에 대해 얘기해 주기 위해서네" 라는 토니 스타크를 향한 닉 퓨리의 대사는, 말 그대로 추후 마블의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들과,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엮는 '어벤져스'라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장대한 청사진을 세상에 공표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마블은 이 장면을 위해 1년 여간 사무엘 L. 잭슨의 배역을 철저히 감췄고, 관객들은 마블 영화에는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숨겨진 쿠키 영상이 등장한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전통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며, 아울러 그 첫 주자가 다름 아닌 사무엘 L. 잭슨이었고, 마블이 '어벤져스'라는 경이로운 프로젝트를 이미 가동시켰다는 각종 사실들에 소름돋는 기대감에 젖게 됩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카메오 출연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 어벤져스의 원대한 청사진을 알리기 위한 고도의 닉 퓨리 카메오 출연 전략



 5  강동원 - 1987 (2017)

맷 데이먼, 케빈 스페이시, 톰 크루즈, 사무엘 L. 잭슨 등을 제치고 '고도의 출연 전략으로 관객을 소름 돋게 했던 영화 속 스타들'의 마지막을 장식할 스타는 무려 한국 배우 강동원입니다. 2017년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에서 이한열 열사 역을 맡았던 배우죠.


장준환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단편 영화 시절의 인연으로 '1987'에 출연을 하고 싶다는 톱 스타 강동원의 의리에 장준환 감독은 어렵사리 '잘생긴 남학생'이라는 배역을 제안했고, 실제로 여주인공 김태리와 강동원이 처음 만나는 시위 장면에서 여성 관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올 정도로 '잘 생긴 남학생' 강동원의 등장은 성공적이었습니다. 


▲ 여성 관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던 '1987' 강동원 등장 장면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장준환 감독은 그 잘 생긴 남학생 강동원이 나중에 이한열 열사였다는 극적 반전까지 영화에 담아냈고, 김태리의 남자 친구 정도로 우정 출연을 했으려니 짐작했던 강동원이 나중에 이한열 열사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는 모든 관객들이 소름돋는 충격과 슬픔으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는 최고의 효과가 나오게 됩니다. 



애초 흥행에 대한 불안감으로 '1987'을 저예산 영화로 만들어야 하나 싶었던 주저함을 톱스타 강동원의 가세로 영화는 제대로 된 상업영화의 틀을 갖춰 개봉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배우 강동원의 우정 출연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고도의 출연 전략, (물론 한 시대의 역사를 공유했던 같은 나라 국민이라는 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전략이었겠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로 반전에 소름이 돋았던 장면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제껏 찾아볼 수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의도적이었던 부분도 컸지만, 공감대가 훨씬 컸기에 나올 수 있었던 최고의 출연 전략, 바로 '1987'의 이한열 열사 역의 배우 강동원이었습니다. 


▲ 고도의 출연 전략으로 최고의 감동을 이끌어냈던 영화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