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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할리우드 영화 특집

할리우드 사내 불륜, 스타들의 가정을 박살낸 영화들

같은 공간에서 매일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로맨스 감정이 싹트는 일은 비일비재하다지만, 하지만 촬영장에서 만난 이성 관계가 이미 가정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라면 많은 사람들이 부글부글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할리우드에서 그런 일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릴린 먼로 시절에서부터 다니엘 크레이그, 라이언 레이놀즈 시대까지, 그 중 대표적인 케이스 10개를 모아봤습니다. 함께 보실게요. (순서는 영화 개봉순입니다!)



 1  소유와 무소유 (1944)

'하이 시에라', '몰타의 매' 그리고 '카사블랑카'와 같은 작품에서 주옥같은 연기로 할리우드 고전 영화 시대의 최고 배우로 우뚝 선 험프리 보가트는 1944년 하워드 혹스 감독의 영화 '소유와 무소유'에서 19살의 미녀 배우 로렌 바콜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데뷔작 '소유와 무소유'에서의 당대 최고 배우였던 험프리 보가트를 지그시 바라보는 로렌 바콜의 모습은 관객을 매혹시키기 충분했고, 빅 스크린에서 보여준 험프리 보가트의 온화하고 사랑스런 미소는 두 배우간의 최고의 케미라고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당연합니다. 험프리 보가트와 로렌 바칼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했기 때문이죠. 


결국 이 작품 이후 험프리 보가트는, 다혈질에 알콜중독, 의부증까지 있었던 세 번째 아내 마요 메소트와 기어코 이혼을 강행했고, 이혼 후 11일 만에 25살 연하 로렌 바콜과 결혼식을 올립니다. 가수 본 조비가 자신의 노래 'Captain Crash and the Beauty Queen from Mars'에서 현대 할리우드 대중 문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커플로 언급했던 사랑의 탄생이었죠. 


▲ 험프리 보가트와 마요 메소트 부부



 2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 (1961)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희곡 작가 아서 밀러는 마릴린 먼로의 세 번째 남편이었습니다. 이 둘의 결혼은 말 그대로 당대 최고의 지성과 당대 최고의 육체의 만남으로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결혼이었죠. 


존 휴스턴이 메가폰을 잡고, 클라크 게이블과 몽고메리 클리프트, 마릴린 먼론가 주연을 맡았던 1961년 영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은 마릴린 먼로의 실질적인 유작이자 아서 밀러와 마릴린 먼로가 이혼을 결정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마릴린 먼로가 주연 배우들과 불륜을 저지르기라도 했냐고요? 아닙니다. 마릴린 먼로 전기에 따르면,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의 각본을 맡았던 남편 아서 밀러는 반복되는 각본 수정과 너무 노골적인 성적인 묘사 등으로 촬영하는 내내 아내 마릴린 먼로와 다툼이 잦아졌고, 결국 두 사람은 이 작품 이후 이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할리우드 배우 윌 스미스가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와의 오랜 결혼생활의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함께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던 말의 의미가 이해가 되네요. ㅠㅠ)



 3  클레오파트라 (1963)

1961년 조셉 L. 맨키위즈 감독의 대작 영화 '클레오파트라'의 촬영이 시작되었을 때 주연 배우 리차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서로를 못 잡아 먹는 앙숙이었다고 하지만,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연신 NG를 연발하며 수도 없이 키스를 반복하다 사랑이 싹트게 됩니다. 


당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스타워즈' 레아 공주 역의 캐리 피셔의 모친으로도 유명한 에디 피셔와 결혼한 상태였고, 리차드 버튼 역시 배우 시빌 윌리암스와 부부 관계에 있었지만, 이미 활활 불붙는 두 배우의 불륜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클레오파트라'의 이 두 주연 배우는 각자의 배우자들과 이혼을 하고 1964년에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두 배우의 결혼식은 세기의 결혼식으로 불렸고, 이 때 리차드 버튼이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선물했던 33캐럿 다이아몬드는 지난 2012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1억 600만 달러 (한화 약 1,200억 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 리차드 버튼과 시빌 윌리암스 부부 (좌),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디 피셔 부부 (우)



 4  무법자 조시 웰즈 (1976)

1976년 개봉한 웨스턴 무비 '무법자 조시 웰스'는 감독이자 주연을 맡았던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가정을 박살낸 영화입니다. 


보수주의 공화당원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조강지처였던 매기 존슨을 두고도 1960년대부터 별거 상태를 유지하며 수차례 혼외정사로 스캔들을 일으키곤 했는데, 결국 '무법자 조시 웰즈'에서 만난 조연 배우 손드라 록과 동거를 시작했다 아내 매기 존슨과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불륜이었고, 손드라 록 역시 남편이 있었던 유부녀 배우로 불륜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사랑을 택했고, 이후 두 사람은 '건틀릿', '더티 해리 4' 등 여러 작품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으나 나중에는 사이가 틀어져서 손드라 록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사기죄로 고소하는 등 험한 사랑의 귀결로 끝이 나게 됩니다.


▲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매기 존슨 부부



 5  폭풍의 질주 (1990)

1990년 영화 '폭풍의 질주'는 톰 크루즈와 미미 로저스의 결혼 생활을 끝내게 된 원인을 제공했던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사랑을 시작했기 때문인데요. 재밌는 것은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말고도 이 영화를 연출한 토니 스콧 감독 역시 조연 배우였던 도나 윌슨과 이 작품에서의 인연으로 부부의 연을 맺게 됩니다.



톰 크루즈는 '폭풍의 질주' 촬영 시작 한 달여를 앞두고 첫 번째 부인이었던 배우 미미 로저스와 이혼을 마무리하고 니콜 키드먼과 결혼식을 올려 2001년까지 부부로 살았고,  토니 스콧 감독 역시 도나 윌슨과의 만남 4년 째인 지난 1994년에 결혼해서 쌍둥이 아들을 낳았고, 토니 스콧이 뇌암에 걸린 것을 알고 비극적인 자살을 택한 2012년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했습니다. 


'폭풍의 질주'는 비록 톰 크루즈와 미미 로저스의 가정을 박살낸 영화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주연 배우, 조연 배우, 감독까지 죄다 사랑에 빠졌으니, 정말이지 촬영장이 무척 훈훈했던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 미리 로저스와 톰 크루즈 (좌), 토니 스콧 감독과 도나 윌슨 부부 (우)



 6  프랑켄슈타인 (1994)

케네스 브래너와 엠마 톰슨은 1990년대 영국 대중문화의 가장 상징적인 커플 중 하나였지만, 지난 1994년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계기로 두 사람은 이혼에 다다르게 됩니다. 감독이자 주연 배우였던 케네스 브래너가 주연 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와 눈이 맞아 불륜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케네스 브래너와 이혼 후 이듬해인 1996년에 엠마 톰슨이 잔 다르크 컨셉으로 화보를 찍은 적이 있는데, 호사가들은 백년전쟁에서 헨리 5세가 만들어놓은 영국의 우위를 뒤엎는 활약을 한 인물이 잔 다르크였다는 점을 두고, 엠마 톰슨이 '헨리 5세'에서 만나 결혼을 했던 케네스 브래너를 저격하는 광고 아니였느냐는 분석을 하기도 했더랬죠.  


▲ 케네스 브래너 (좌), 엠마 톰슨 (우)



 7  데어데블 (2003)

슈퍼히어로 영화팬들이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졸작 '데어 데블'은 두 주연 배우 벤 애플렉과 제니퍼 가너의 사랑과 가정을 박살낸 영화이기도 합니다. '데어 데블' 촬영 당시 벤 애플렉은 가수이자 배우 제니퍼 로페즈와 '베니퍼'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약혼을 한 커플이었고, 제니퍼 가너 역시 미드 '펠리시티'의 동료 스콧 펠리와 결혼 4년차 부부였기 때문입니다. 



촬영 당시부터 서로의 사랑의 확인했던 벤 애플렉과 제니퍼 가너는 '데어 데블'이 개봉을 하던 즈음 벤 애플렉은 먼저 제니퍼 로페즈와의 약혼을 깼고, 두 달 후 제니퍼 가너는 스콧 폴리와 이혼을 합니다. 그리고 몇 달 후 보스턴 레드삭스 홈구장 펜웨이 파크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1차전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며 벤 애플렉과 제니퍼 가너는 공식 커플관계를 공표했으며, 이듬해 결혼식을 올립니다. 


▲ 제니퍼 로페즈와 벤 애플렉 커플 (좌), 스콧 펠리와 제니퍼 가너 부부 (우)



 8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2005)

2005년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는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라는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들의 만남이라는 것도 큰 화제였지만, 당시 브래드 피트가 시트콤 '프렌즈'의 스타 제니퍼 애니스톤과의 5년 간의 결혼생활을 끝낸 이유가 안젤리나 졸리였기 때문에 더더욱 전세계 미디어를 화끈하게 다룬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영화 촬영을 통해 브래드 피트를 처음 알게 된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의 봉사활동에 공감하고 아이들에게 너무도 다정한 브래드 피트와 완벽하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이후 전 세계 언론들은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에게 '브란젤리나'라는 최고의 할리우드 고유명사를 부여하며 커플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2006년 1월 11일 안젤리나 졸리가 브래드 피트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졌다고 밝히면서 브란젤리나 커플은 공식화됩니다. (아울러 잘 알려졌다시피 그로부터 12년 후 두 사람은 4,000억 재산을 놓고 살벌한 이혼 공방 중이죠.)



▲ 브래드 피트와 제니퍼 애니스톤 부부



 9  드림 하우스 (2011)

2011년에 다니엘 크레이그와 레이첼 와이즈는 뉴욕에서 크레이그의 십대 딸과 와이즈의 다섯 살짜리 아들과 가족 친구 두 명, 다해서 네 명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은 레이첼 와이즈가 영화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와 헤어지고 나서 얼마 안 된 2010년에 사귀기 시작했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경우에는 사츠키 미첼과 약혼까지 했다가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었구요. 당연히 두 사람의 관계가 격렬한 불륜의 결과라는 소문이 돌았기에 조용한 비밀 결혼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든 파경의 원인이 된 것은 2011년 짐 쉐리단 감독의 영화 '드림 하우스'였습니다. 부부를 연기하다 사랑에 빠졌고, 가정을 깨뜨리고 또 다른 가정을 선택했던 관계였죠.


▲ 다니엘 크레이그와 사츠키 미첼 (좌), 레이첼 와이즈와 대런 아로노프스키 (우)



 10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 (2011)

'그린 랜턴: 반지의 제왕'은 라이언 레이놀즈에게 최악의 슈퍼히어로를 연기한 배우라는 불명예와, 지난 2008년부터 3년 여를 함께 했던 스칼렛 요한슨과의 이혼을 안겨준 영화이기도 했지만, 이 작품으로 만나 현재까지 할리우드 잉꼬 부부로 살고 있는 블레이크 라이블리와의 사랑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 촬영 당시 라이언 레이놀즈와 브레이크 라이블리는 뉴욕 거리에서 함께 다정하게 거니는 모습이 파파라치 사진에 잡히는 등 분위기가 묘하게 달아 올랐고, 결국 촬영이 마무리 되어갈 무렵, 라이언 레이놀즈는 "어린 여우같은 여배우가 라이언을 홀려 이 지경이 되었다"는 스칼렛 요한슨의 울분을 뒤로 하고 이혼을 선택했고, 블레이크 라이블리 역시 미드 '가십걸' 동료 배우였던 연인 펜 바드글리와 결별을 하고 라이언 레이놀즈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스칼렛 요한슨의 가정을 박살낸 영화이자, 펜 바디글리의 사랑을 앗아간 영화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이었네요. 


▲ 라이언 레이놀즈와 스칼렛 요한슨 (좌), 블레이크 라이블리와 펜 바드글리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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