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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이슈

심재철 문재인 내란죄 논란? 1980년 서울의 봄 심재철, 유시민, 이해찬, 문재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나?

자유한국당 소속 심재철 국회부의장이 문재인 정부의 취임 이후 지난 6개월 동안의 행적이 내란죄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내란죄로 고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큰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심재철 국회부의장의 문재인 대통령 내란죄 고발 의도가 도대체 무엇인지, 심재철 국회부의장이 어떤 정치인인지, 아울러 과거 그 유명했던 1980년 서울의 봄 학생운동 당시 심재철과 유시민, 이해찬, 그리고 문재인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드릴게요.



서울대 총학생 회장 출신 정치인 심재철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1958년 1월 18일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광주 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외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고,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대학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학생 운동 이후 교사에 임용되어 영어교사를 지내다가 MBC에 입사하였다가, MBC 보도국 기자를 지냈다가 1988년 MBC 최초 노조를 만들었으며, 그런 경력을 바탕으로 1995년 신한국당 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광주광역시 출신 나름 운동권 스타였기에 김대중에게 가려했으나, 김대중이 배신자는 받아주지 안아 신한국당으로 갔다는 얘기도 솔솔 돌았죠.



심재철, 문재인 내란죄 고발 강수 이유는?

자유한국당 소속 심재철 국회부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이후 지난 6개월간의 정치 행적이 내란죄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훈령이나 규칙에 의해 사후에 창설된 특정한 성향의 민간인이 주축인 적폐청산위원회가 함부로 헌법기구나 법률기구의 비밀창고를 마음껏 뒤지는 것에서 법치파괴가 잘 나타나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내란죄로 고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요.


사실 좀 말이 안되는 주장이지만, 그렇다면 심재철 자유한국당 국회부의장이 이런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심재철 국회부의장은 이런 초강수 발언으로 여론몰이를 해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하려는 꼼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 대통령에 대해 이정도 발언은 해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열세에 있는 심재철 국회부의장이 관심을 받지 않을까 싶은 술수인 것이죠.



1980년 서울, 심재철, 유시민, 문재인 그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나?

1980년 서울의 봄이라고 많이들 들어보셨죠? 바로 1979년 10월 26일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 살해하며 독재정권이 무너지며 사회 전반에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군부에 의해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고, 1980년 4월 15일 전두환은 중앙정보부를 장악한 후, 당해년도 4월 18일 개헌을 하겠다고 발표해서 1981년 하반기 전에는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며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짓밟아 계엄령을 선포하자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1980년 5월 14일에는 전국 21개 대학에서 15만 명의 학생들이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고, 5월 15일에는 서울역 광장에 무려 15만명의 학생들과 시민이 운집하게 되며 학생 시위가 최고조로 이르게 되며, 군부와 학생 시위간의 정면 충돌이 촉각을 다투는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이때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이 나서게 됩니다. 심재철은 더이상 시위가 과열되면 군부에게 무력개입의 빌미를 준다고 주장하면서 학교로 돌아가서 다시 계획을 짜자는 제안을 했고, 결국 5월 16일 고려대학교 학생회관에서 서울시내 23개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모여 회의를 하였는데, 결과는 심재철의 주장대로 가두시위를 일단 중지하고 정상수업을 받기로 결의를 하게 됩니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의 심재철과 유시민>


이른바 '서울역 회군'이었는데요.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던 유시민은 여기서 물러나면 모든 것이 끝이라며 회군 반대를 했고, 경희대 복학생이었던 문재인 역시 시위 철수 반대에 뜻을 함께 했던 것이지만, 그러나 심재철의 주도하에 서울역 회군으로 시위가 중단이 되게 됩니다.


그 이후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구요? 바로 그 다음날 0시를 기해 비상계엄선포지역은 전국 일원으로 확대되었으며, 전두환은 광주를 군홧발로 짓밟았고, 군부는 전국의 대학에 진주해서 학원을 군사력으로 통제하였으며, 학생운동권 지도자들은 모두 검거되어 경찰서에서 고문을 받다 감옥이나 군대로 끌려갔고,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던 끔찍한 역사의 중심에 심재철이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