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할리우드 스타 특집

'가오' 때문에 인생작, 인생캐를 날릴뻔했던 배우들

할리우드 스타 배우들에게는 누구나 인생작, 인생캐가 있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이 그렇고, 라이언 레이놀즈의 데드풀, 조니 뎁의 잭 스패로우, 엠마 왓슨의 헤르미온느가 그런 것이겠죠.


근데, 할리우드의 유명 스타들 중에서는 이런 자신의 인생 캐릭터를 맡지 못할뻔했던 아찔한 선택의 순간들이 여럿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가오' 때문에요. 어떤 사정들이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할게요. 



 1  줄리 앤드류스 - 사운드 오브 뮤직 (1965)

로버트 스티븐슨 감독의 1964년 작 '메리 포핀스'는 영화 출연 경험이 전무했던 가정주부 줄리 앤드류스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으로 줄리 앤드류스는 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분 여우주연상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동시 수상하는 영예를 안으며, 줄리 앤드류스를 '메리 포핀스'의 영국인 유모 역으로 끝까지 밀어 부쳤던 제작자인 월트 디즈니에게 최고의 만족감을 안겨주기도 했더랬죠. 


그리고 이듬해인 1965년 줄리 앤드류스는 자신의 최고 대표작이자 인생 캐릭터를 연기하게 될 작품에 출연하게 되는데,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입니다. '메리 포핀스'에서의 줄리 앤드류스의 연기에 탄복한 20세기 폭스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유모 마리아 역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줄리 앤드류스를 일 순위로 캐스팅했고, 북미 흥행 수익만 무려 1억 5,867억 달러(한화 약 1,8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흥행 성적으로,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흥행 기록을 26년 만에 경신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서 5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대박을 친 작품이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죠.



그런데, 이런 인생작의 인생 캐릭터를 제안하는 20세기 폭스의 구애에 줄리 앤드류스는 단번에 오케이를 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도 똑같고, 거기에 유모라는 캐릭터까지 판박이인 영화에, 어는 정도 기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2년 연속으로 같아도 너무 똑같은 배역을 맡는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던 것이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로서 가오가 있지, 그러다가 '유모' 전문 배우로 낙인이라도 찍히게 되면 어쩌냐는 우려 때문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네요.


▲ '사운드 오브 뮤직'의 줄리 앤드류스 (오른쪽 아래)




 2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타이타닉 (1997)

원래 '타이타닉'의 남자 주인공 잭 도슨 역으로 20세기 폭스가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던 배우는 매튜 맥커너히였습니다. '타임 투 킬'로 당시 최고의 신진 스타로 떠올랐던 배우죠. 


하지만 연출을 맡은 제임스 카메론은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극강의 비극적 사랑을 선보였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강력하게 추천했고, 결국 20세기 폭스의 승인까지 떨어졌지만, 정작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잭 도슨 역을 마뜩지 않아 합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그냥 로맨틱 남자 주인공 연기가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반항기 가득하면서도 자유분방하고 저돌적인 잭 도슨 역에 '로미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만한 선택지는 없다고 판단했던 제임스 카메론은 온갖 열과 성을 다해 디카프리오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그레고리 펙이나 지미 스튜어트와 같은 할리우드 전설의 로맨틱 스타들의 반열에 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 운운하는 말까지 곁들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결국 그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설득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잭 도슨 역을 맡았고, '타이타닉'은 할리우드 영화 역사를 새로 쓰는 경이로운 흥행을 일궈내게 됩니다. 


▲ 영화 역사를 새로 쓰는 경이로운 흥행을 일궈냈던 '타이타닉'


근데, 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로맨틱한 남자 주인공을 맡기를 꺼려했을까요? 어쩌면 '로미오와 줄리엣' 촬영 당시 그 유명했던 스크린 밖에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 간의 불화가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시간이 흘러도 절대 녹슬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을 연기했던 두 배우가 영화 밖에서는 서로 못 잡아먹어 으르렁대기 일쑤였다는 게 '로미오와 줄리엣' 촬영장의 유명한 일화였으니, 그 당시 트라우마가 심각해서였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어쩌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미 이때부터 가오가 떨어지는 로맨스 영화의 남자 주인공 역으로는 아카데미 위원회에 어필하기 힘들 것이라는 계산이 서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매튜 맥커너히를 추천하는 스튜디오에 맞서 끝까지 자신을 고집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 보답이라도 하겠다는 듯, 승차칸 러브씬, 뱃머리 드라이브, 판자 위 연인과의 애절한 작별 등 혼신의 연기를 펼쳤지만, 그러나 역대 최다 14개 부문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타이타닉'의 성과에도 남우주연상이 노미네이션에 빠져 아주 크게 빈정상해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참가하지 않았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수상 소감으로 "아 앰 더 킹 오브 더 월드"를 외치는 장면을 집에서 곱씹는 처지가 되었으니까요. (근데, 진짜 그 이후로 디카프리오는 절대 다시 로맨틱 남자 주인공 역은 맡지 않는 강단을 보여준답니다!)



 3  오드리 헵번 - 티파니에서 아침을 (1961)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 소설가인 트루먼 카포트는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한다면 여자 주인공은 단연코 마릴린 먼로라는 원칙이 서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오드리 헵번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파라마운트 측에, 오드리는 내 오랜 친구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며 트루먼 카포트는 오로지 마릴린 먼로였다고 합니다.


제작사에서 강력하게 원한다지만, 오드리 헵번 역시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인공인 홀리 골라이틀리 역을 꽤 망설였다고 합니다. 어려운 배역이고, 마릴린 먼로에 비해 배우 경력도 짧고, 주인공 홀리의 성격이나 생활 등이 자신의 실제 모습과 너무 다른데, 그걸 극복해낼 연기 테크닉도 부족하다는 것이 오드리 헵번이 말하는 망설임의 이유였습니다. 



결국 그런 오드리 헵번을 설득해서 배역에 안착시킨 것은 감독인 블레이크 에드워드였고, 노련한 연출자의 지휘 아래 오드리 헵번은 예의 숨어있던 잠재력을 발휘 다시 한 번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지만, 그러나 오드리 헵번이 홀리 역을 망설였던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가 마릴린 먼로와 자신을 냉정하게 저울질한 친구이자 원작자인 트루먼 카포트에게 자존심이 상해서였다는 얘기도 있었더랬죠. (데뷔작 '로마의 휴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그 후에도 '사브리나'와 '파계'로 두 차례나 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을 수가 없었겠네요.)


▲ 트루먼 카포트와 오드리 헵번 (오른쪽 아래)



 4  빌 머레이 -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2004)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빌 머레이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니겠지만, '고스트버스터즈', '사랑의 블랙홀', '킹핀', '못 말리는 첩보원'과 같은 코미디 영화에 주로 출연했던 빌 머레이가 본격 드라마 배우로도 연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린 작품이며, 아울러 빌 머레이에게 처음으로 아카데미상 노미네이션의 영광을 안겨준 뜻깊은 인생작입니다. 


그러나 연출을 맡은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처음부터 빌 머레이라는 배우를 염두에 두고 밥 해리스라는 인물을 각본에 옮겼다는 사실이 이미 귀에 들어간 상태에서도,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빌 머레이를 캐스팅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유는 역시 단순했습니다. 도무지 연락 자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다소 꼰대 같은 기질의 배우로도 유명한 빌 머레이는 대놓고 배역을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전화나 이메일 등 모든 연락을 몇 달씩이나 무시했고,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빌 머레이와 골프를 쳤다는 사람들한테까지 무작위로 연락을 취하는 등 1년가량을 노력했지만, 당시 에이전트도 없이 활동했던 빌 머레이와 접촉은 도무지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 빌 머레이와 소피아 코폴라 감독


결국 제작자인 미치 글라저가 나서서 두 사람의 만남을 성사시켰지만, 그때까지도 빌 머레이의 최종 캐스팅 확정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 촬영을 위해 일본으로 떠나야 했고, 일본에서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피가 말라가는 순간에 빌 머레이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빌 머레이가 왜 그렇게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속을 태웠냐구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너무 뻔한 사실입니다. 제아무리 자기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이라고 해도, 데뷔작을 찍으면서 상대 배우도 당시에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배우를 데려다 놓고, 당신을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으니 반드시 출연해주셔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내가 그런 영화에나 출연할 군번이냐는 게 이유였음은 쉽게 추측이 가능하죠. 


하지만 웬걸요. 위에서도 얘기했듯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빌 머레이에게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노미네이션을 안겨준 작품이면서, 동시에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손에 쥐여준 작품이었으며, 빌 머레이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각본은 당해 연도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 각본이었으니, 가오가 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작품을 내쳤다면 빌 머레이로서도 상당히 후회가 됐을 법 하겠네요.



 5  아놀드 슈왈제네거 - 터미네이터 (1984)

지금으로서는 '터미네이터'라는 시리즈에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빼놓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 되었지만, 아놀드 슈왈제네거 역시 처음에는 터미네이터 역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유는 자신이 맡을 배역인 사이보그 T-800이 빌런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보디빌딩 챔피언에서 배우로 전향 '코난 - 바바리안'으로 유명세를 조금씩 얻어 가던 시점이었는데요. 아놀드 슈왈제네거 입장에서는 코난과 정반대 이미지의 미래에서 온 살인기계라니, 말은 캐릭터가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스트롱맨 히어로 코난에게 악역이라니, 물들어올 때 계속 저어서 히어로의 바다로 나아 가야 하는데, 이상한 게 끼면 폼이 나지 않는다며 거절의 의사를 밝힌 것이죠.



하지만 제임스 카메론이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죠. 제임스 카메론은 아놀드 슈왈제네거에게 이 터미네이터라는 배역이 그냥 살인 기계에 나쁜 놈만은 아닌 오히려 주인공보다 비중이 더 크다, 나중에는 책임지고 정의의 편, 원하는 히어로로 만들어줄 테니까 자신을 믿어달라 설득했고,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배역을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야 말이 필요 없죠.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그렇게 원했던 히어로 배역인, '코만도', '프레데터', '레드 히트', '트루 라이즈', 심지어는 '유치원에 간 사나이'까지, 그 어떤 히어로 배역보다 더욱 히어로스러운 캐릭터는 바로 터미네이터였으니, 만약 아놀드가 이 인생 캐릭터를 그대로 날렸다면, 할리우드 스타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물론, 그 이후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도 아무것도 없었을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