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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할리우드 스타 특집

군인에서 배우가 된, 할리우드 군필 스타들 10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 역시 유명세를 얻기 전에 다른 직업을 가졌던 경우가 많습니다. 그 중에는 군대에서 군인으로 복무를 했던 경우도 많은데요. 


어떤 스타들은 징병으로 전쟁에 참가했고, 또 어떤 스타들은 자원 입대로 군대 경험을 밑천 삼아 성공을 거두기도 했고, 또 어떤 스타들은 반항심에 군대에 갔다가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도 했다는데요. 어떤 사례들이 있는지, '군인에서 배우가 된, 할리우드 군필 스타들', 함께 보실게요.



 1  척 노리스

척 노리스가 군대에 있었다는 건 크게 놀라울 일이 아니죠. 할리우드 궁극의 거친 사내 중 한 명인 척 노리스는 1958년 19살의 나이에 미국 공군에 입대해서 한국 오산 공군 기지에서 근무를 했다고 합니다. 척 노리스는 어린 시절 군대 경험을 잊을 수 없으며 오늘날까지도 아주 소중하게 여긴답니다. 규율의 기본을 배우고 세상을 향한 눈을 뜨게 해주었다구요.


척 노리스가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경험이 한 가지 있는데, 한국에 있으면서 지역 사람들이 무술을 연마하는 모습을 관찰한 것이었답니다. 척 노리스는 훈련 첫 주에 어깨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고, 산책을 나갔다가 마을 사람들이 회전 힐 킥을 연출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 광경이 하도 신기해서 공군 기지 유도 교사인 안 선생님이라는 사람에게 자기가 봤던 한국인들의 무술을 가르쳐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습니다. 그 무술은 한국의 옛 맨손 무예인 당수도라고 불리는 것으로, 척 노리스는 한국을 떠날 무렵에 척 노리스는 당수도 검은띠를 땄고, 유도로는 갈색띠를 땄습니다. 할리우드 스타 척 노리스를 만든 것은 한국에서의 군대 복무 경험이었네요. 



 2  스티브 맥퀸

'황야의 7인', '타워링' 같은 영화로 유명한 배우 스티브 맥퀸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까닭에 반항아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배우생활을 하는 내내 줄곧 그런 반항아 이미지를 유지했죠. 곡예 비행 조종사와 창녀의 아들이었던 스티브 맥퀸은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947년에 해병대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습니다. 군대에서도 반항적인 성정은 드러났고, 명령에 잘 복종하지 못하고 그 때문에 일곱 번을 이병으로 강등당하는 일까지 있었답니다.  


게다가 한 번은 주말 휴가를 나갔다가 그냥 여자친구와 2주간 휴가를 보내고 맙니다. 당연히 군대는 탈영변 신분이 된 스티브 맥퀸을 붙잡았고, 그는 저항을 하다가 41일간 영창에 갇힙니다. 하지만 영창에서 보낸 시간 덕분에 스티브 맥퀸은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또 한번은 훈련중에 배가 모래톱에 부딪쳐 부대원들이 물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병사들이 허우적거렸고, 스티브 맥퀸이 물에 뛰어들어 다섯 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합니다. 이 일로 스티브 맥퀸은 명예 전역을 했고, 나중에는 해병대에서 보낸 시간을 아주 좋게 기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스티브 맥퀸을 만든 해병의 추억입니다



 3  클린트 이스트우드

1930년 생으로 올해 나이 여든 여덟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징병이 돼서 군대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영화 속 더티 해리처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전장에서 적들을 상대해서 총을 들었다니 상상만해도 꽤 멋진 일일 것 같지만, 실상은 달랐다네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군복을 입을 일은 많지 않았다고 해요. 한국 전쟁은 고사하고, 미국을 벗어난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 오드 기지에서 수영 교관으로 복무했기 때문이죠. 


그래도 그의 수영 기술은 쓸모가 꽤 많았답니다. 한번은 해군 어뢰 수송 비행기에 탑승한 적이 있는데, 엔진이 고장나면서 비행기가 바다로 추락했습니다. 그냥 바다가 아니었답니다. 얼어죽기 십상인 11월의 바닷물이었고, 게다가 그곳은 백상어가 들끓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조종사를 도와 해안까지 2킬로미터 정도를 헤엄쳐 목슴을 건질 수 있었답니다. 



 4  모건 프리먼

모건 프리먼 같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와 군인은 잘 연결되지 않는 단어같아 보이지만, 아닙니다. 모건 프리먼 역시 군필 할리우드 스타이고, 군복무 경험은 모건 프리먼의 인생을 바꾼 일이었다고 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처럼 모건 프리먼에게 군대 생활은 자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깨닫는 시기였다고 합니다.  


1955년에 모건 프리먼은 하늘을 나는 꿈을 실현하려고 미 공군에 입대했습니다. 심지어 잭슨 스테이트 대학교의 연극과 장학금을 거절하면서까지 강행했던 결정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전투 조종사로 훈련을 받던 과정에서, 모건 프리먼은 자신이 비행기 조종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후 모건 프리먼은 직감을 따라 4년 후에 공군을 떠났고, 배우로서의 스타덤에 이르는 기나긴 길에 오른 끝에 성공적인 배우의 길을 걷게 됩니다. 미 공군 입대 복무 경험이 없었다면 배우의 길이 자신의 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모건 프리먼이네요. 



 5  올리버 스톤

올리버 스톤 감독은 베트남 전쟁에서 실제 전투 복무까지 했던 군인 출신입니다. 1967년 20살의 나이에 군대에 들어간 올리버 스톤은 베트남 복무를 요청해서, 1967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25보병사단에서 전투 요원으로 복무하며 전투 중 두 차례 부상을 당했고, 수차례 훈장까지 받았던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1987년과 1990년, 올리버 스톤에게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차례나 안겨준 영화 '플래툰'과 '7월 4일생'은 자신의 이런 베트남전 복무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고 합니다. 



 6  레너드 니모이

스타트렉의 원조 스팍 레너드 니모이 역시 군인 출신입니다. 1973년에 일어난 화재로 그의 개인 기록은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그를 알았던 사람들과 몇 가지 남은 자료로 그의 군 경력에 관한 스토리가 남아 있습니다. 레너도 니모이는 육군에 입대해서 조지아 주의 포트 맥퍼슨에서  주둔했으며, 병장까지 진급해서 올라갔다 1955년에 제대를 했다고 합니다. 


레너드 니모이는 소대에서 아주 뛰어난 군인이었다고 하는데, 같은 소대에 우연찮게도 배우인 켄 베리가 있었습니다. 그 둘은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케리는 연기에 욕심이 있는 니모이의 소망을 들어주며 꿈을 키우게 해줬다고 합니다. 끼가 있었던 레너드 니모이는 군 생활 중 행사에서 진행자로도 많은 활약을 했다고 하네요. 



 7  험프리 보가트

영화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는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그렇다고 새로운 관심사를 찾는다거나 직업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런 험프리 보가트는 1918년에 미 해군에 입대해 미국과 유럽 사이를 오가는 부대원들을 운송하는 해군 운송병으로 대부분의 군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해군 생활 중 험프리 보가트는 바로 자수하기는 했지만 부대를 이탈한 적도 있었답니다. 즉시 자수했기에 탈영으로 처리되지는 않았지만 독방에서 3일간 빵과 물만 먹으며 구금되었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근데, 재미있는 점은 험프리 보가트는 상당히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제대 후 집에 돌아오면서 험프리 보가트는 집안이 기대하는 가치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위선과 속물 근성을 혐오했고, 선적 처리나 접착제 세일즈맨처럼 단순한 일을 하며 인생을 배웠던 험프리 보가트는 그런 인생을 밑천 삼아 후에 대배우가 됩니다. 



 8  클라크 게이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케이블은 이미 스타가 된 후 자원입대를 한 경우입니다. 클라크 게이블은 1942년 1월 아내였던 인기 코미디 배우 캐롤 롬바드와의 결혼 3주년 기념 파티를 집에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만 아내의 비행기 추락 사고 사망 소식을 듣게 됩니다.


캐롤이 죽은 뒤 비탄에 잠겨 있던 클라크 게이블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항공대 장교로 입대하여 유럽 전장에서 비행기를 몰고 히틀러에 맞서 싸웠다고 하는데요. 한 번은 히틀러가 미국의 유명 배우 클라크 게이블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유럽 전선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클라크 게이블을 생포하는 대가로 엄청난 돈을 내걸기도 했다고 합니다. 


▲ 공군 장교 시절의 클라크 게이블


아내의 죽음에 자원 입대한 클라크 게이블은 항공대 생활 중 비행기를 몰고 아내가 추락했던 라스베가스 산을 다년간 뒤져서 아내 캐롤의 추락 현장을 찾아 아내가 착용하고 있었던 스카프 조각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죽은 아내의 스카프 조각을 죽을 때까지 애지중지 아끼며 함께 묻어달라고 했던 클라크 게이블 최고의 로맨티스트였네요.



 9  갤 가돗

'원더우먼' 갤 가돗은 미스 이스라엘 출신의 미모의 모델이면서, 동시에 징병제 국가인 이스라엘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전투 교관으로 군복무를 했던 군인 출신 배우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갤 가돗이 '원더우먼' 배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개월 간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고, 실제 촬영에서도 많은 부분에서 대역 없이 거친 액션을 소화해내는 모습은 그런 군복무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죠. 


하지만 갤 가돗은 그런 자신의 군생활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도 강했는지, 지난 2014년 이스라엘 방위군이 가자지구의 민간인 대피지역에 무차별 폭격을 가한 것에 대해 이스라엘군을 옹호하는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올리며 이른바 '시오니즘 논란'에 휩싸이며 구설수를 겪기도 했습니다. 민간인 아이들을 500여 명 이상 죽음으로 몬 백린탄 공격에, 아무리 이스라엘 군인 출신이어도, 자국군의 안전을 위해 기도한다는 메시지가 '원더우먼' 배우로서 적절한 행동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10  아담 드라이버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카일로 렌 아담 드라이버는 2001년 미국 뉴욕에서 9/11 테러가 일어난 후 주위 사람들과 입대에 대한 대화를 끊임없이 했습니다. 그의 친구들, 가족들, 모든 사람과 입대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해병대에 입대하겠다는 아담 드라이버를 적극적으로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 드라이버의 머릿속에는 이미 군인으로 나라를 위해 싸워야겠다는 생각만 있었고,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나서 결국 아담 드라이버는 미국 해병대에 입대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운동 능력도 뛰어난 편이 아니었고, 남자들끼리의 형제애를 나누는 곳에는 어디 한 군데 속해본 적이 없었음에도, 용케도 아담 드라이버는 해병대 문화에 잘 적응을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산악 오토바이 사고로 흉골에 부상을 입습니다. 그 와중에도 격렬한 훈련을 마다하지 않고 임했습니다. 동료 병사들에게 괜찮다는 걸 보여주려구요. 하지만 2년 동안 복무하면서 전장에는 나가지도 못했고, 최종적으로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되며, 이후 군인 시절의 강인한 경험을 바탕으로 배우로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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